[논설실에서] 조용히 살고픈 몸부림 기사의 사진
지난해 발표된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 2018’은 대리운전 빅데이터를 분석한 보고서였다. 대리기사가 영업을 위해 하루 평균 5~7㎞를 뛰어다닌다거나 전업 대리기사의 최고 수입이 월평균 530만원이었다거나 하는 통계가 담겼다. 이용자에게 의견을 물은 인터뷰도 함께 실렸는데, 어떤 서비스가 생기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말없는 대리기사”란 답변이 나왔다. 간혹 겪게 되는 원치 않는 대화나 라디오 소리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여성 이용자가 여성 기사를 요청하듯, 조용히 귀가하고 싶을 때 말없는 기사를 부를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에 선택항목을 추가하면 어떠냐는 얘기였다. 대리운전의 계약조건이 될 만큼 여간해선 조용함을 누리기 힘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요즘 카페와 레스토랑은 벽과 천장의 시멘트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인테리어가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모던한 분위기를 위해 탁자와 선반은 매끈한 재질이 주를 이루고 미니멀리즘 추세에 장식도 많지 않다. 과거 흔했던 식탁보와 커튼 같은 것은 구경하기 어렵다. 청결함을 강조하느라 주방은 훤히 들여다보이게 만든다. 그 결과는? 더 시끄러워졌다. 소리를 흡수하던 인테리어 요소가 사라지고 튕겨내는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니 대화를 하려면 목소리를 높이게 되고 목소리가 커지면 더 큰소리가 튕겨 돌아다닌다. 이런 트렌드를 먼저 겪은 미국에는 ‘아이 히어 유(IHearU)’란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했다. 맛집 정보를 제공하면서 그곳의 시간대별 소음도를 데시벨(dB)로 수치화해 알려주고 있다. ‘귀가 행복한 세상’을 모토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추진 중이라니까 곧 한국에도 들어오지 싶다.

조용한 걸 유독 좋아하는 핀란드의 한 벤처기업은 ‘적막’을 수출하고 있다. 3년 전 소음 차단용 전자 귀마개 콰이어트온(QuietOn)을 개발했다. 귀에 넣는 보청기처럼 생겼고 3.8g 몸체에 초소형 마이크와 스피커가 장착돼 있다. 마이크가 주변 소리를 잡아내면 보청기와 정반대로 그 소리를 제거해 정적을 스피커로 내보낸다. 비행기 기내소음이나 아파트 층간소음 같은 200㎐ 이하 저주파 소음도 차단해 준다. 이 회사가 이번엔 콰이어트온 슬립(Sleep)이란 모델을 내놨다. 잠잘 때 옆 사람이 코고는 소리만 골라 차단해 주는 기능을 가졌다. 특정 주파수 대역의 소음을 선별적으로 걸러내는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 기술을 적용해 이걸 끼우고 잠들면 자명종 소리는 들을 수 있는데 코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차에서, 식당에서, 침실에서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사람들의 욕구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노력을 낳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층간소음이 부르는 살인이 아니어도 생활소음은 인간 수명을 갉아먹고 있다. 유럽연합이 재작년 주최한 세미나에선 생활소음을 ‘조용한 살인자’로 규정했다. 서유럽인들이 소음 탓에 잃는 건강수명을 합하면 100만년에 이른다고 한다. 우울증과 스트레스 등 정신건강뿐 아니라 고혈압 심근경색 심부전 뇌졸중 같은 질병과의 연관성이 속속 입증됐다. 심지어 비만과 남성 불임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계에서 소음공해가 가장 심각한 도시는 중국 광저우, 가장 조용한 도시는 스위스 취리히라고 한다. 앞으로 이 순위는 전기차 보급률에 따라 요동칠 듯하다. 내연기관 차량의 엔진음은 도시 소음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는 지금 미세먼지 때문에 전기차를 보급하려 하지만 전기차 시대의 도래는 아마 귀가 먼저 알아챌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생활소음을 미세먼지 다음으로 건강에 치명적인 환경 요인이라고 지목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으니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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