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오늘의 설교] 어디를 볼 것인가

예레미야 33장 1~9절

[오늘의 설교] 어디를 볼 것인가 기사의 사진
호박벌은 우직하고 부지런한 습성이 있습니다. 꿀을 모으기 위해 하루에 200㎞ 이상을 비행합니다. 하지만 날기에 적합한 신체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몸은 크고 뚱뚱한 데 비해 날개는 작고 가볍습니다. 이런 약점에도 호박벌이 잘 날 수 있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자신의 악조건에 관심을 끈다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았다고 우리의 걱정이 줄거나 어려운 일이 없어질까요. 그렇진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별의별 생각이 다 들 것이고 수많은 문제를 맞닥뜨릴 것입니다. 결국 인생이란 이런 생각과 문제에 쫓겨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도 바울에게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환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예루살렘행을 강행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아니하노라.”(행 20:24) 이것이 기준이었습니다. ‘복음과 예수가 먼저, 나는 나중’이란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굳건히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동안 우리 삶에 이런 영적 기준을 주시길 원합니다. 수많은 일과 문제에 둘러싸인 인생이 아니라 영적 기준대로 사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길 바랍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갇혀 있을 때 하나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라면 하나님이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예레미야는 갇혀 있습니다.

당시 유대 상황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국인 앗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이후 앗시리아는 쇠퇴기를 맞습니다. 이틈에 애굽이 강대국으로 부상합니다. 남유다는 강대국으로 등장한 애굽을 의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애굽이 시들하더니 바벨론이란 신흥세력이 등장합니다. 이런 시국에 남유다가 갈라진 것입니다. 한쪽에선 애굽을, 다른 한쪽에선 바벨론을 의지하라고 합니다. 어느 쪽도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대언자인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고난이 주어진 것입니다.

고난의 이유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일하심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고난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멈추게 하신 겁니다. 애굽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 바벨론을 붙들고 싶은 마음을 멈추게 하려고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올 한 해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주님께서는 내 생각과 뜻, 행동을 멈추길 원하십니다.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분명 일을 행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도 그분은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언제 체감할 수 있을까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절) 본문처럼 우리가 세상을 향해 눈을 감을 때 하나님을 향한 눈이 뜨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한 해 동안 답답하다고 느낄 때, 죽을 것 같을 때, 안 되는 일 투성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때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역사가 있길 바랍니다.

본문은 이 기도로 죄악이 사해지고 회복되는 역사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8~9절)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며 회개와 회복을 체험하는 은혜를 누리는 한 해 되길 축원합니다.

조영진 본성결교회 목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