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엔화 몸값… 원치 않는 ‘안전자산’ 비명 기사의 사진
일본 엔(円)화가 원치 않는 ‘안전자산’ 대접에 괴로워하고 있다. 수출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꾀하는 일본 입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낮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엔화 인기가 급격히 치솟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글로벌 불확실성 요인들도 ‘엔고(円高) 현상’에 기름을 붓는다. 불과 1년 전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저물가) 탈출’을 공언했던 일본은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완화 기조(엔화 가치 절하)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10일 도쿄 본점에서 중앙은행 지점장회의를 열고 “물가상승률 2%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때까지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일본의 기준금리는 연 -0.1%다. 10년물 장기 국채 금리도 0% 안팎을 오간다. 이러한 ‘초저금리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발언이다.

일본 정부는 2012년 말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무제한 금융완화 정책을 펼쳤다. 시중에 엔화가 대량으로 풀리며 엔·달러 환율은 하강 곡선을 그렸고 일본 투자자금은 고수익을 쫓아 글로벌 자산시장으로 이동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일본을 도왔다. 지난해에만 네 차례 기준금리를 올리며 ‘강달러’를 유도했다. 일본은 ‘엔저’를 누리며 소비심리 확대, 제조업 실적 증가 등을 누릴 수 있었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해 3월 “디플레이션이 없어졌다. 기업 수익은 사상 최고에다 노동시장은 완전고용 수준”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최근 ‘속도 조절’을 암시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달러 가치는 급락했다. 유로화, 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를 대상으로 산정하는 달러화지수는 지난 9일 95.20으로 전월(96.71) 대비 1.51이나 떨어졌다. 달러화지수 하락은 달러 약세, 다른 통화의 강세를 뜻한다.

특히 미국 애플의 ‘어닝 쇼크’가 덮친 지난 3일 엔·달러 환율은 10개월 만에 최저치인 104.96엔까지 떨어졌다. 급격한 엔화 가치 상승에 일본은행과 일본 재무부, 금융청이 긴급회의를 열기도 했다. 엔화 급등은 인공지능(AI)에 따른 프로그램 매매의 영향(flash crash)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일본 금융 당국은 “시장이 안정을 되찾길 강하게 희망한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화 강세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에 위험 회피 심리가 더해지면서 그동안 저평가됐던 엔화로의 투자 수요가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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