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용만 (17) 부시·대처 등 각국 정상들과 만남은 특별한 체험

재무부 장관직 잘 마무리했지만 선거 때 정치인 도움 준 게 문제 돼 유죄판결 받았다가 곧 사면복권

[역경의 열매] 이용만 (17) 부시·대처 등 각국 정상들과 만남은 특별한 체험 기사의 사진
이용만 장로(왼쪽 두 번째)가 1992년 9월 재무부 장관 자격으로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 초청돼 조지 H 부시 대통령 내외와 환담하고 있다.
장관 재직 중엔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특별한 체험이었다. 1992년 9월 조지 H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 참석한 IMF 이사국 재무부 장관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당시 한국은 비이사국이었는데도 초청 명단에 들어갔다.

나의 경우 미국 재무부 재정차관보가 방한했을 때 금리 자유화를 두고 설전을 벌인 게 초청 이유가 아니었는가 추측한다. 한국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파를 최소화하면서 단계적으로 금리를 자유화하는 우리 논리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나는 부시 대통령에게 두 달 후 다가올 연임을 위한 대통령 선거에서 꼭 당선되리란 덕담을 건넸다. 그는 기분이 좋아져 왼손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감을 보였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의 오찬도 잊을 수 없다. 대처 총리가 퇴임 후 사적 용무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신라호텔에 초청했다. 건강하고 활달하며 시종일관 분위기를 끌고 가는 여걸의 모습이 엿보였다. 하타 쓰토무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장관과는 술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그가 한·일각료회담 이후 술자리에서 우리나라 안동소주를 컵에 가득 따르고선 “맛있다, 맛있다” 하길래 더 센 폭탄주를 선보였다. 이후 일본에 갈 때마다 친분을 나눴다. 하타 장관은 훗날 일본 총리도 역임한다.

인생의 정점에서 장관직을 보냈다. 노태우정부의 말미도 잘 마무리했고 고금리 해소와 투신사 재건, 증권시장 부양 등의 굵직한 성과도 냈다. 더 이상 인생의 굴곡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의 앞날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김영삼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시련이 다시 찾아왔다.

1992년 9월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새벽에 조찬을 하자고 했다. 식사 전 김영삼 대표는 장로로서 긴 시간 동안 기도를 했다. 나는 당시 집사 직분이었다. 여당 대통령 후보라는 점보다 장로 직분이란 게 내게는 더 높아 보였다. 그런 그가 선거자금을 모으는 데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대통령 선거 경쟁자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대한 자금조달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의례적인 답변만 하고 나왔는데 며칠 뒤 김 후보의 아들인 김현철 측 인사가 찾아와 재촉하기 시작한다. 정치자금 모금에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었다. 당시는 공직선거법이 강화되기 전이었고 선거는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나는 자금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고 김현철에게 연결하는 일만 도왔다. 다만 안영모 당시 동화은행장이 선거자금에 쓰라고 가져온 5000만원을 정치인들에게 전액 배분한 게 문제가 됐다.

정치인에게 도움을 준 내가 오히려 수사 대상에 올랐고 휴가차 떠난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몇 차례 귀국 의사를 통보했는데도 청와대가 입국을 막았다. 훗날 귀국해 수사와 재판을 받고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3개월 만에 사면 복권됐다. ‘내가 헛살았구나’ 후회하며 참회했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안영모 은행장에게 한 건의 특혜도 주지 않았음이 입증됐다. 판결문은 “개인적인 축재에 사용하지 아니했고 은행감독원장과 재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안정 및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음을 감안한다”고 밝혔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의 ‘역경의 열매’ 회고록은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의 저작물(이용만 평전-모진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인생 이야기, 21세기북스, 2017)을 바탕으로 추가 취재를 통해 작성된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만 평전’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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