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미스터 프레지던트’ 기사의 사진
조선왕조 창업의 정당성을 노래한 용비어천가는 ‘불휘 기픈~’ ‘내히 이러~’로 각각 시작하는 1, 2장을 제외하면 태조 이성계 가계를 칭송하는 낯 뜨거운 내용으로 그득하다. 정치권에서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칭송하는 여당을 공격할 때 용비어천가를 소환하는 까닭이다.

정통성이 약하거나 국민지지 기반이 취약한 정권일수록 용비어천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승만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 팔순 생일을 즈음해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부르도록 했다. ‘우리 대통령’이다. “(생략) 오늘은 리 대통령 탄생하신 날 꽃 피고 새 노래하는 좋은 시절 우리들의 리 대통령 만수무강을 온 겨레가 다 같이 비옵나이다/ 우리들은 리 대통령 뜻을 받들어 자유평화 올 때까지 멸공전선에 몸과 맘을 다 바치어 용진할 것을 다시 한번 굳세게 맹세합니다.” 북한 뺨치는 우상화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부터 ‘대통령 찬가’를 공식행사에서 사용했다. 박정희 대통령 입·퇴장 땐 어김없이 “~대한 대한 우리 대통령 길이길이 빛나리라 길이길이 빛나리라”로 끝나는 김성태 작곡, 박목월 작사의 대통령 찬가를 부르거나 들어야 했다. 한국 록 음악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은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 달라는 정권의 요청을 거부했다 미운털이 박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대통령 찬가는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까지 계속 불리다 김영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 미국과 달리 의전용 대통령 전용곡이 없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여러 노래를 써왔다. 미국은 1954년부터 1812년 만들어진 ‘Hail to the Chief’를 대통령 전용 공식 의전곡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곡가 김형석이 2017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헌정한 곡이 ‘미스터 프레지던트’다. 문 대통령 입·퇴장 때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 곡은 다행히(?) 가사가 없어 아직은 용비어천가 시비에서 자유롭다.

서울시가 지난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입장 때 미스터 프레지던트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해 구설에 올랐다. 박 시장의 즉각적인 사과로 더 이상 논란이 확산되진 않았지만 문 대통령 지지층의 불쾌감은 여전한 듯하다. 그나저나 다음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헌정된 이 곡을 공식 의전곡으로 계속 쓸까.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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