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승욱] 법관 뺀 사법부 독립은 없다 기사의 사진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는 삼권분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힘을 나눠 서로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외운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대학에서 헌법을 배울 때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입법부는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으로 구성되고 행정부는 직선제 대통령이 각부 장관을 임명해 통솔하는데, 사법부는 누구에게 권한을 받았을까. 공부를 잘한다고 생명을 박탈할 자격을 주는 것도 아닌데 국민 모두 판사의 결정을 존중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이런 생각을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은 학자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고 말았다.

30년 전 설익은 생각이 새삼 떠오른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을 TV에서 생중계로 봤기 때문이다. 그는 피의자 조사를 받으러 가면서 대법원을 배경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억울하다는 내용이었다. 부덕의 소치라는 말에서는 대법원장까지 지낸 사람에게 세상이 너무 야박하다고 탓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얼마 전만 해도 재판은 권력자의 몫이었다. 왕은 신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이다. 12세기에 순회판사가 있었던 영국에서조차 법관은 왕이 서명한 법이 잘 시행되는지 확인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왕은 멋대로 법관을 파면했다. 법을 나라를 다스리는 핵심 원리로 내세웠던 중국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판사로 칭송받는 송나라 포청천의 직책은 개봉부의 지사였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원님으로, 황제에게 재판권을 받은 행정관리였다.

근대 시민사회 성립으로 법관은 권력자의 손에서 벗어났다. 영국에서는 찰스 1세가 처형되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법관의 신분보장이 명문화됐다. 1701년 왕위계승법은 영국 국교 신자가 아니면 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려고 제정됐다. 하지만 혁명적인 내용인 ‘법관은 의회만이 해임할 수 있다’는 조항이 뒤에 붙어 있었다. 이후 왕의 권위를 거부한 법관이 누구의 힘을 빌려 재판의 정당성을 인정받는가는 각국 혁명의 주요 주제였다.

사실 이 문제의 답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모든 나라의 헌법에 예외 없이 담겨 있다. 우리 헌법은 103조에 규정돼 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권력자로부터 권한을 받지 않았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선거를 통해 정통성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법과 양심에 따른다는 믿음이 있기에 법관은 재판을 진행할 수 있고, 사법권이라는 권력이 발생한다는 논리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강제로 제한하고, 재산권 행사를 막을 수 있으며, 생명마저 빼앗을 수 있는 법관의 힘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구속을 촉구하는 구호 속에서 꿋꿋하게 준비한 말을 이어간 양 전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강한 사법부’로 생각했을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에 밀리지 않는 대법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필요한 곳에 힘을 집중하는 판사 조직이야말로 외부의 간섭에서 사법부를 독립시키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는 말은 법관이 절대권력자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왕의 손에서 벗어났다는 게 스스로 왕이 됐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법관의 독립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인류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다. 헌법 103조는 법과 양심을 제외한 어떤 것도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는 법관의 의무 조항이다. 판사가 변호사의 연수원 기수나 출신 고교뿐 아니라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법정에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후배 법관의 고단함은 더욱 아닐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국가의 앞날을 걱정했는지는 훗날 역사가가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법관을 빼놓고 사법부 독립을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