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전정희] 필리스틴 기사의 사진
딱 100년 전인 1919년 3·1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개항장 전북 군산에서도 교회, 기독학교와 기독병원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윌리엄 불은 선교보고서를 써 내려갔다. ‘10여명의 일경은 학생들 보는 앞에서 교사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러자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우리도 함께 데리고 가세요”라고 외쳤다. 병원에도 일경이 들이닥쳤다. 병원 조수들은 “우리도 잡아가라”고 외쳤다. 당황한 일경이 권총을 꺼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어떤 남학생이 가슴을 풀어 제치고 맞섰다.

또 다른 선교사 브라운은 감옥의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감옥 안은 처박아 놓은 소처럼 사람들로 가득했다… 인두를 불에 달궈 지지고 거꾸로 매달아 놓고 코에 고춧가루 물을 붓는 등 잔인한 고문을 받았다.’

캐나다 의료선교사 그리어슨은 함경도 성진의 끔찍한 광경을 적었다. ‘도끼 등으로 무장한 소방대원과 장총을 지닌 일경이 주재소를 나와 거리를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두들기고 난도질하고 총을 쏘았다. 성진교회 교인 대부분은 7년 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됐다.’

평양의 미국 선교사 마펫은 선교부의 정치적 중립과 일제의 협조 요청을 거부했다. 그리고 신학생 5명의 고문 등을 본국에 타전했다. 신학생들은 십자형틀에 묶여 29대의 태형을 당했다. 마펫의 반일적 행위에 장학사 야마다가 그를 데리고 현장 검증에 나섰는데 일본인들의 구타와 난도질, 곤봉질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기록에 남겼다.

공주에서는 시위에 참여한 기독 여학생 조화복을 일본 군관이 말을 타고 쫓아가 군도로 손을 잘라버렸다고 루이스 임(임영신·여성지도자)이 기록했다. 조화복을 데려가려고 쫓아왔던 부모마저 죽임을 당했다. 3·1 만세운동은 그리스도인들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그 무렵 개신교인은 인구의 1.5%였다. 장로회 교인 수는 7만여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예수의 사랑과 진리를 지키고자 저항했다. 2015년 통계청 조사 개신교인은 967만여명이다. 이 한국교계가 만세운동 100주년에 깃들인 예수 정신을 찾는 데 미흡하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렸던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대중의 신뢰를 잃고 있다. 무엇보다 지도자 가운데 성서의 ‘블레셋’ 어원에서 기인한 필리스틴(Philistine·교양 없는 속물)이 너무 많아서다.

전정희 뉴콘텐츠 부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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