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전정희] 나와 권사님들과 낡은 봉고차 기사의 사진
‘내가 부임 후 첫 주일 예배를 마친 뒤 박미분 이복남 민주식 세 분의 권사님이 점심 대접을 해 주고 싶다는 게 아닌가. 장로가 없는 교회에 목회자가 새로 왔으니 본인들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듯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날 노 권사님의 음식 대접을 난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SNS로 연결된 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교회 강기원 목사의 글을 읽고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건국대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2005년 늦깎이 농촌목회자가 된 강 목사가 16명의 미자립 갈계교회에 부임했을 때를 추억하며 쓴 글입니다. 강 목사가 ‘권사 3인방’이라며 믿고 의지하던 세 분 중 민 권사가 최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3인방 모두 평생 예수 섬기다 이제 하늘나라 친구가 되신 거죠.

강 목사 부임 이듬해 큰딸 예빛이가 태어났고 교인들이 찾아와 축복해 주었습니다. 당시 민 권사가 대표기도를 했죠. 강 목사는 올 3월 중학생이 되는 딸에게 권사님과의 추억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갈계교회는 8년 전 국민일보 연재 ‘아름다운 교회길’ 취재차 알게 됐습니다. 1928면 지리산 그 험한 산중 갈계리에 복음이 들어왔죠.

저는 ‘산골교회 오케스트라 공연 주선’ 등으로 몇 차례 갈 기회가 있어 그 사정을 나름 압니다. 갈계리는 고령화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시골교회 어디나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갈계교회라고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1974년 헌당 된 자그마한 예배당은 비가 들이치고 곳곳에 곰팡이가 슬었었죠. 세 권사님은 30대 후반의 막내아들뻘 목회자를 사랑으로 받들었습니다.

강 목사는 미자립을 벗어나고 싶어 교인들에게 청국장을 만들어 팔자고 했습니다. “묵묵히 메주를 쑤던 권사님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청국장을 만들자면 차량이 필요했습니다. 강 목사가 몰던 경차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죠. 고령의 교인들을 예배당으로 모시는데도 소위 봉고차라 불리는 승합차가 필요했습니다. 강 목사는 제직회를 열어 목회 비전을 말하고 중고차 구매를 위한 특별 헌금을 의결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기도를 하고 있는데 권사 3인방과 두 분의 집사님도 나오셨습니다.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강 목사를 그들이 보게 됐죠. 강 목사는 경차를 팔아 200만~300만원짜리 중고 봉고차를 사려 했습니다. 무모한 사업이 시작된 거죠.

그해 7월 어느 아침. 새벽 기도를 같이했던 권사 한 분이 예배당과 붙어 있는 사택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85세의 박미분 권사였죠. 박 권사는 허리춤 치마 속에서 보자기를 풀어 건네며 “목사님, 이 돈 받으세요”하더랍니다. 사택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문밖에서요.

“목사님. 지금 농협 문 열자마자 돈을 찾아오는 길입니다. 내가 교회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교회도 오래 다녔는데 내가 먼저 내야 교인들이 따라 낼 것 같습니다. 차 사는 데 요긴하게 쓰세요.”

띠지를 두른 현금 100만원이었습니다. 강 목사는 눈물 때문에 ‘고맙다, 살펴 가시라’는 말도 못 했습니다. 그리고 한 주, 한 주가 흐르자 차량 헌금은 400만원이 됐고 500만원이 됐고 600만원이 됐습니다. 경차는 7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산 봉고차가 지난해 말 13년의 수명을 다했습니다. 자립교회를 위한 메주와 절임 배추 판매를 위해 달렸고, 농작물 수확 철이면 짐차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기도원도 갔고, 오일장에도 수시로 드나들었으며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남해 통영 관광지 등으로 달렸습니다. 서울 큰 병원에 입원한 교우 가족의 문병을 위해 매연 푹푹 뿜으며 국도와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했습니다.

이 봉고차는 남원시가 지원하는 폐차 지원사업에 추가 당첨되어 지난해 12월 폐차 순서를 밟고 있습니다. 100만원 미만 지원금이 나왔죠.

강 목사가 후속 중고 승합차 구매를 위해 모아놓은 돈은 1045만원입니다. 새 차를 살 수 없는 형편의 강 목사의 사정이 눈에 들어와 통화하려 했으나 마지막 3인방 민 권사 소천으로 교회장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이제 갈계교회 교인은 10명이 됐습니다. 농촌교회는 앞으로 한 마리의 양만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강 목사는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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