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지훈] 퇴사의 꿈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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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바람 따라 풀려나가는 얼레의 연줄처럼 저 멀리 아득한 미래를 향해 하염없이 흘러가는 게 시간이다. 왜 우린 어제로 돌아갈 수 없는가.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물리학자 김상욱이 지난해 펴낸 ‘떨림과 울림’에는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정육면체 퍼즐 큐브를 떠올려보자. 큐브의 모든 면이 각각 하나의 색깔을 띤 시점을 태초라고 가정했을 때 시간이 흐른다는 건 큐브가 무작위로 돌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큐브의 모양이 갖는 경우의 수는 무려 4000경(京). 큐브가 1초에 한 번 회전한다면 모든 형태를 구현하는 데만 1조년이 걸린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큐브를 70억개쯤 준비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나눠준다. 이들이 모두 무작위로 큐브를 돌렸을 때 70억개 큐브가 한꺼번에 색이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실 시간이 반대 방향으로 흐를 확률은 이보다 훨씬 낮다.”

더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미래로만 흐르는 건 경우의 수(엔트로피)가 많은 쪽으로 시간 운동 역시 이뤄지는 열역학 제2법칙이 존재해서다. 하지만 이건 따분한 이야기일 테니 여기까지만 하자. 과학적인 설명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우린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하며 살아간다. 송구영신이니 근하신년이니 하는 말들이 오가는 연말연시엔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의 강을 망연히 바라볼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단절 없이 흐르는 세월에 눈금을 새긴다.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그리고 흘러간 각각의 나이에 화사하거나 스산한 의미를 보태 과거를 추억하곤 한다.

내게 아슴푸레한 스무 살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문장은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 ‘스무 살’에 등장한다.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끼리만 저만치 등 뒤에 남는 것이다.…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그렇다면 ‘서른 살의 문장’으로는 무엇을 들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했던 최승자의 시구를 첫손에 꼽을 것이다.

1981년생인 나는 올해 세는나이로 서른아홉이 됐다. 하지만 2월에 태어나 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갔으니 친구들은 이제 40대가 됐고, 나 역시 체감 나이는 마흔이다. 마흔에 어울리는 들큼한 문장이 없을까 찾아봤다. 때마침 서점가엔 마흔을 주제로 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흔에 관하여’ ‘마흔이 되기 전에’ ‘마흔에게’ ‘마흔 공부법’…. 이른바 ‘마흔론’을 설파하는 신간이 봇물을 이루는 게 요즘 출판계의 특징이다. 40대가 출판시장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해서다. 하지만 마흔과 관련된 많은 책들을 들춰봐도 포근한 위로나 서늘한 깨달음을 얻을 순 없었다.

마흔을 앞두고 마주한 책들 가운데 간단없이 밑줄을 긋게 만든 작품은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가 펴낸 ‘일하는 마음’이었다. 행간 사이를 서성이게 만드는 글귀가 곳곳에 숨어 있었는데 이런 대목이 대표적이었다. “직장은 일상을 구성하는 첫 번째 제약 조건이라서 ‘직장인’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하루 일주일 1년의 생활 주기가 대체로 결정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다른 삶을 살려면 직장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밖에 없는 걸까. 확실한 건 내 또래 많은 이들에게 퇴사는 ‘로망’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거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처럼 온라인서점에서 ‘퇴사’를 검색하면 제목이나 부제에 ‘퇴사’가 들어간 책이 30권쯤 나오는데 전부 2015년 12월 이후 출간된 것이다. 서울 을지로 한 서점에서는 퇴사 관련 책을 진열한 매대가 최고 인기라고 한다. 20대에는 취업을, 30대 이후엔 퇴사를 고민하는 게 청년들의 평균율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직장인으로 사는 건 끝나지 않는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퇴사는 언제나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덧붙이자면 ‘일하는 마음’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일하기 위해 모였으므로 각자의 사정보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닥친다면 그때는 각자의 사정을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만 한다.…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면 일은 결국 일일 뿐이다. 그럴 수 있다고 믿을 때에만 지금 이 순간 마음껏 일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박지훈 문화부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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