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문록] 사람의 느낌 기사의 사진
나는 가끔 사람으로 사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사람처럼’ 옷을 입고 침대에서 함께 자고 사람 가족이 되는 것만으로는 사람의 느낌을 충분히 알 것 같지는 않다. 내 이름은 보리다. 올해로 꼭 열다섯 살이 되었다. 오래전에 지방자치단체 등록을 마친 어엿한 반려견이다. 태어나서 첫 일 년 동안 세 번이나 집을 옮겨야 했지만, 삼세 번 만에 나는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내 가족이 된 누나는 반려견을 들이는 대개의 경우와 달리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를 누나라고 칭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우리는 동등한 항렬의 가족관계가 되었다. ‘현실 남매’처럼 둘이서 아웅다웅 산다.

누나는 카피라이터이고, 나는 카피라이터 집 개로 살다 보니 어느새 말과 생각이 늘었다. 반려견으로 살면서 보고 들은 것을 이렇게 기록할 정도가 되었다. 누나는 가끔 이런 말을 했다. “꼭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너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사람 일에 참견도 많으니 다음 생에 한 번쯤은 사람으로 태어나도 좋을 거야.”

이왕이면 사람으로 태어날 때 약간의 도움이 되라고 누나는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이게 무슨 태교도 아니고, 차라리 그 시간에 산책을 데려가는 게 내 생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건만. 무엇보다 내가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야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누나 무릎 위에서 2분쯤은 얌전히 귀를 기울인다.

반려견을 위한 TV 채널이 있듯이 반려견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는 생각을 누나 말고 또 다른 견주들도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 덕분에 나는 점점 더 생각이 많은 강아지가 되어갔다. 믿지 않겠지만, 사람의 글과 생각을 듣는 것은 복잡다단한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사람으로 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사람의 세상은 대개 언어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리 와, 앉아, 손, 기다려, 하이파이브”와 같이 간식을 먹기 위해 배웠던 기초생활용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사람과 함께 살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의 말들 중에는 다른 동물들도 배워둘 만한 깨우침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누나는 아메리카 인디언 오네이다 부족과 내 먼 조상인 늑대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영국 작가 제이 그리피스의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라는 책이었다. 바로 이 부분. ‘오네이다 부족은 늑대가 사는 새로운 영토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후 늑대들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회의에서 항상 누군가는 늑대의 권리를 옹호하게 되었으며, 회의를 시작할 때 누가 늑대를 대신해 말할 것인가를 묻곤 했다고 한다.’

오네이다 부족이 늑대를 위해서 했던 말을 지금 반려견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누가 반려견을 대신해 말할 것인가. 곰을 위해서, 고래를 위해서, 산천어를 위해서 말하는 이들도 있다.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뜻밖의 배신을 하는 경우도 일어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말 못하는 자들을 대신해 말할 것인가, 누가 약한 자들을 대신해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관심을 멈출 수는 없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될 때, 열다섯 살 반려견인 나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사람이 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사람으로 사는 일이 또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를. 진짜 사람의 느낌을.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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