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재열] 다시 갈림길에 서서 기사의 사진
산업화의 1차 갈림길에서 대량생산 포디즘이 등장했고
석유파동 후 2차 갈림길에선 일본식 산업체계가 부상했다
다시 갈림길에 선 2019년 새로운 혁신의 길로 들어서려면
유연하고 안전한 노동시장 과감한 기득권 해체 이뤄내야


100년 전, 휘발유 엔진의 발명으로 두 갈래 길이 열렸다. 최고급 자동차를 주문 생산해 부유층에게 비싸게 파는 길과 값싼 자동차를 대량 생산해 일반 시민들에게 대량 판매하는 두 가지 길이다. 처음 카를 벤츠가 자동차를 만든 독일은 전자를, 미국은 후자를 택했는데, 자동차 기술을 산업화하는 데 성공한 것은 미국의 헨리 포드였다. 1913년 T형 자동차 공장에서 시작해 세계적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포디즘은 2차대전 이후 미국 헤게모니의 산업적 토대가 됐다.

MIT 교수 피오레와 세이블은 ‘산업화의 두 번째 갈림길’(1984)에서 포디즘 성공의 가장 큰 원인을 기계화에 반대할 숙련노동자가 없었고, 고가 자동차의 잠재적 수요자인 지주층이 남북전쟁에서 패배해 몰락한 데서 찾았다. 몰려드는 이민자와 목화밭에서 해방된 흑인들로 산업도시엔 값싼 노동력이 넘쳤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이들을 조립라인에 세우려면 그림으로 작업 지시를 해야 했다.

노동력이 넘쳐나니 기계화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는데도 비싼 설비투자를 요하는 대량생산을 택한 이유는 ‘임금주도성장’ 때문이었다. 진보적인 노동법의 보호 하에 조직률이 70%까지 치솟은 노조는 교섭력을 배경으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물가-임금 연동제를 정착시켰는데, 임금 인상은 노동자의 구매력 증가로 이어져 수요를 대폭 촉진했다.

대량생산을 세계적 표준으로 자리매김한 결정적 계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인데, ‘분업의 심화는 수요가 확대돼야 가능하다’는 애덤 스미스의 명제를 확실히 증명했다. 참전 2년 만에 28만대의 비행기와 250만대의 자동차를 비롯, 대포와 탱크를 쏟아낸 미국의 물량전 앞에 장인 생산의 모범국 독일과 일본의 패배는 예견된 일이었다.

50년 전, 세계를 뒤흔든 석유파동과 함께 두 번째 갈림길이 나타났다. 포디즘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주된 원인은 역설적으로 기득권이 돼버린 노조와 수요 팽창을 견인해온 케인지언적 규제의 경직성이었다. 내구성 소비재 시장은 포화됐고, 고임금과 복잡한 규제로 굳어진 시스템에 석유파동과 밀 흉작은 큰 충격을 주었으며, 저성장의 늪에 빠져 경쟁력을 잃은 미국 제조업은 공동화(空洞化)됐다.

일본이 택한 길은 다품종 소량생산이었다. 가성비 뛰어난 도요타와 혼다의 소형차들이 세계 곳곳의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그 성공 원인은 단출한 재고, 신속한 대응, 다기능 숙련노동력, 화합적 노사 관계, 상생적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 거래망 등이었는데, 이런 신속하고 유연한 생산 방식은 종신고용과 연공형 임금으로 대표되는 확실한 고용 안정성 때문에 가능했다.

2019년, 우리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IT와 인터넷이 만든 초연결사회에 빠르게 적응한 구글이나 애플 같은 플랫폼 기업이 전통적 챔피언들을 몰아냈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뿌리 깊은 소유 관념을 공유나 구독이 대체하고 있다. 거래비용이 감소하다 보니 모든 것을 내부화한 위계적 기업의 존립 근거가 해체되고, 조직의 경계가 무의미해졌다. 수평으로 연결된 개인들이 만든 협동생산이 점점 중요해지고, 개념 구상부터 해법 실행까지 탈중심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지, 생산, 소비 간 구분이나 물질과 정신 간 구분이 흐려졌다. 기술 비약의 시대, 혁신과 창조성을 기반으로 중국 경제는 첨단 기술의 거대한 파도가 되어 한국을 위협한다.

그런데 우리의 자화상은? 곳곳에서 기득권의 저항이 심하다. 제도와 규제의 경직성은 한 치의 혁신도 허락지 않는다. 자동차 한 대 생산하는 데 미국 공장에 비해 두 배 시간이 더 걸리지만 28년 연속 임금 인상 요구 파업을 해 온 현대자동차 노조, 택시업계의 파업 앞에 주저앉은 우버나 카풀, 기득권의 반대로 무위로 돌아간 광주형 일자리, 겹겹의 규제 앞에 좌절해 자율주행차의 사업화 창구를 외국으로 돌린 서울대 서승우 교수 등….

과거 성공한 길은 기술 진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감한 사회 혁신과 기득권 해체,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을 통해 기술 변화에 대한 수용성을 확대하는 제도 개혁이 받쳐주어서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정부와 노조는 흘러간 가요를 틀고 있다. ‘임금’을 대체한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은 흘러간 80년 전 레퍼토리다. 강성 노조는 ‘단결!’이라 외치는데, 국민은 불공정하게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기득권 수호!’로 듣는다.

새로운 혁신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안전한’ 노동시장이 필수적인데, 기득권 집단의 과감한 양보와 변화 과정의 탈락자를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안전망에 대한 확실한 투자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한숨지으며 프로스트의 시를 읊지 않기를 기원한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지 않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