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어머니는 울지 못했다 기사의 사진
스물넷 청년 김용균씨는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였다. 지난달 11일 컴컴한 발전소 안에서 휴대전화 조명에 의지해 홀로 일하던 김씨는 석탄 수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으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지만 김씨 어머니는 매일 국회를 찾았다. “내 아들은 죽었지만, 다른 사람들 자식은 더 이상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며 국회의원들 손을 일일이 잡고 읍소했다. 그의 호소에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지난 연말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김씨가 숨지고 일주일 뒤 수능을 마치고 강릉에 우정여행을 떠났던 대성고 학생 10명 중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로 희생됐다. 교육부가 부랴부랴 체험학습 실태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나서자 유족들이 제동을 걸었다. 한 희생자의 어머니는 조문 온 유은혜 부총리를 붙잡고 “사고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선생님들의 잘못처럼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제자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선생님들을 더 힘들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유족들은 합동분향소와 빈소를 언론에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언론의 취재 경쟁에 대성고 학생들이 상처받을 것을 걱정해서다.

2018년 마지막 날에도 가슴 아픈 사건은 계속됐다. 진료하던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가 정신질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임 교수 유족은 가해자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한 사회적 낙인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사조차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임 교수가 우울증 극복기를 책으로 펴낸 사실도 언급했다. “사랑했던 환자를 위해 자신의 고통을 고백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가해자 처벌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걱정했던 유족은 고인이 못다 한 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조의금을 병원과 동료들에게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사회면에 유독 많이 실렸던 지난달, 유족들의 말과 행동을 접하곤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다 이내 ‘지금껏 과연 나는 몇 번이나 유족 입장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썼을까’라는 지점에 생각이 머물렀다. 많이 부끄러웠다.

돌아보니 데스크가 된 이후에 증상이 심해졌다. 큰 사고가 나면 으레 다른 매체에 우리가 전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사연이 실릴까봐 조바심을 냈다. ‘독자가 궁금해한다’며 후배 기자들을 닦달할 때도 유족이나 지인들이 처한 상황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 내게 동갑내기 임세원 교수의 사망 사건은 충격이었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임 교수의 삶과 유족이 보여준 행동은 망치로 내 뒤통수를 때린 듯했다. 한 매체는 “우리 사회에서 언젠가부터 사라져가는 품격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느끼게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들이 준 울림을 ‘품격’이라는 한마디로만 표현하긴 부족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들의 행동이 감동을 준 것은 큰 아픔을 겪은 이들이 자신의 아픔과 타인의 아픔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국민일보는 지난달부터 ‘공동체 복원’이라는 주제로 연중기획 시리즈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다룬 내용은 주로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었다. 어쩌다 한국 사회가 다른 이들이나 집단을 향한 공감과 배려 없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 남은 곳이 됐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경제 활력이 떨어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무한경쟁 속에 오로지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각자의 이해관계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결과로 이어졌고, 혐오와 차별을 키우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진단이었다. 그러나 아직 공동체 회복으로 가는 길은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앞으로 답을 찾기 위해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겠지만 이미 임 교수 유족이 그 답을 보여준 것 같다.

한장희 사회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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