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용만 (20·끝) 생사 고비 넘나들 때마다 구원의 은혜 받아

크게 감사할 일만 해도 열 가지, 모든 것 하나님께 맡겨서 가능

[역경의 열매] 이용만 (20·끝) 생사 고비 넘나들 때마다 구원의 은혜 받아 기사의 사진
이용만 장로가 지난달 16일 서울 강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두손을 모은 채 기도하고 있다. 이 장로는 “모두 다 주님의 은혜였다”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실패는 인생의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 실패에서 새로 출발하는 불굴의 재기가 훨씬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가능한 일이다.

1933년 강원도 평강군에서 태어나 편안하고 넉넉했던 부모님 밑에서 살던 삶은 한국전쟁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열일곱 나이로 혈혈단신 월남했다. 한국전쟁 참전과 춘천 가리산 전투에서의 총상, 그리고 명예제대라는 불확실함 속에서도 더 나은 날을 향해 전진했다. 50년대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에도 벽돌을 쌓듯 하나하나 삶의 토대를 만들어 나갔다. 밑바닥에서 시작했지만, 희망과 낙관을 잃지 않았다. 내 힘으로 학비를 벌어 고려대를 졸업했다.



60년대와 70년대 산업화의 대장정을 거치며 공직자로 살아왔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에 윗사람을 믿는 구석으로 삼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서봉균 남덕우 김용환 장관을 모시고 여한 없이 뛰던 시절이었다. 80년대 뜻하지 않은 일로 공직을 떠났지만, 그것이 다른 기회를 줄지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 내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늘 사심을 버리고 조직을 위해 힘껏 내달렸다. 이는 90년대 11년 만의 재무부장관 복귀로 이어진다.

돌이켜보면 나는 은혜를 참 많이 받은 사람이다. 단순히 운이 좋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 때마다 누군가 나를 도왔다. 은혜의 강물이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됐다.

첫째, 한국전쟁 직전 강원도 평강군 고향 땅에서 인민군에 끌려갔다면 100% 죽었을 것이다. 둘째, 강원도 춘천 가리산 전투에서는 실탄이 급소를 관통할 수 있었다. 왼쪽 어깨 쪽 총을 맞은 자리에서 한 뼘만 옮겼어도 심장을 관통했을 것이다. 또 총을 맞고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나뭇등걸에 걸려 살아났다. 셋째, 함께한 전우가 얼굴 정면에 총을 오발했을 때도 귓불을 스치며 총상을 면할 수 있었다. 넷째, 남한 땅에 혈혈단신 남겨졌을 때 젊은 혈기에 방탕할 수도, 반대로 낙담할 수도 있었다. 다섯째, 외로움에 힘들어했던 나를 김석홍 목사님과 교회는 한 가족처럼 받아들이고 보살펴 줬다. 여섯째, 세계 최빈국에서 원조 수혜국으로 급성장한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역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일곱째, 고속 승진으로 자칫 교만해질 수 있었는데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여덟째, 관가는 떠나면 그만인데 금융계 현장을 경험한 뒤 11년 만에 재무부 장관으로 다시 나라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얻었다. 아홉째, 몇 년 전엔 대리석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두세 바퀴 굴렀다. 머리나 뼈를 심하게 다칠 수 있었는데 크게 다치지 않았다. 열째, 이 나이까지 건강을 주셔서 작은 일이라도 주변에 봉사하며 살 수 있고 젊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이 모든 사건에서 누가 나를 보호해 줬을까. 어떤 분이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답은 하나님 그분이시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함께해 온 결과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많은 역경을 딛고 여기까지 온 내 결론이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이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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