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메달”… 성적만능에 눈감은 폭력의 카르텔 기사의 사진
오영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 대책 후속조치 계획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날 문체부는 빙상계, 유도계 등에서 불거진 체육계 성폭력 파문과 관련해 감사원 공익 감사를 청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권현구 기자
구기 종목 대학부 A선수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성)폭력과 관련된 체육계 문제는 특정 종목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며 “어린 시절부터 지도자와 선수, 선배와 후배 간의 체벌 정당화가 이뤄지고, 성인 운동부로도 이어지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비위를 저지른 체육계 지도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복귀하는 경우가 숱하다”며 “선수들은 2차 피해나 보복을 우려해 문제를 수면 위로 쉽게 꺼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종목의 전직선수 B씨(22)는 선배가 후배 선수를 폭행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는 지도자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체육계 특유의 규율 문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운동부 내 선후배 간 기강 문제를 고려해 눈을 감아주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전 유도선수 신유용씨는 “성폭행 이후 코치가 ‘어디 가서 누구한테 말하면 너의 유도 인생은 끝이야’라고 협박했다”고 고백했다. 신씨는 “지난해 11월 실명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했지만 일부 유도계 인사로부터 유도계 이미지를 훼손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했다.

지도자들도 할 말이 없지 않다. 고교 야구부의 C감독은 “인성과 실력을 갖춘 선수를 길러내는 것보다 팀 성적과 고3 선수들의 진로를 신경 쓰는 것이 임무의 7할”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선수들을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 성폭행 파문 이후 성적지상주의와 온정주의가 판치는 한국 엘리트 체육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엘리트 체육 시스템 때문에 성적지상주의가 자리를 잡고 이는 다시 체육계 내의 폐쇄적 구조와 엘리트 위주의 도제식 훈련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피해를 감내했고, 신씨도 코치가 자신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기에 피해를 입고도 수년간 침묵으로 지낸 이유다. 피해 선수는 좁은 체육계에 소문이 빨리 나 비위를 폭로할 용기를 내기 어렵다. 폭로하더라도 성인 국가대표팀, 소속팀 등에서 다시 만나는 사례도 많다. 엘리트 선수가 체벌이나 비위를 견디지 못하는 것을 두고 ‘정신력이 부족한 선수’ ‘끈질기지 못한 선수’로 낙인이 찍힐 때도 있다.

따라서 폐쇄적인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성폭력 등 불미스러운 사건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 자명하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장은 “현 엘리트 체육으로 형성된 기득권 세력을 보호하려고 위에서 피해 선수들을 회유·협박하는 일이 일어난다”며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비위 지도자에게 적당한 징계를 준 뒤 복귀시키는 일이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9일 소개한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 대책의 후속조치를 이날 발표했다. 먼저 성폭력 조사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참여를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또 체육계 비리 업무를 전담하는 독립기관으로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을 지원키로 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체육계 비리 조사 등을 전담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가대표선수 관리와 운영 실태에 대해서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오영우 문체부 체육국장은 “성적지상주의와 엘리트 체육 육성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장기적인 근본대책을 마련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도 ‘체육인 쇄신 결의안’을 이날 냈다. 대한체육회는 “메달을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온정주의 문화를 철폐하겠다”며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사법처리 대상 검찰고발을 의무화하고 은폐 등 조직 차원의 비위 행위를 저지른 단체에 대해선 회원자격을 영구 배제하고 단체임원까지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홈페이지에 비위자 처벌·징계내역 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도 했다. 대한체육회는 정부와 긴밀한 협의하에 가혹행위 및 (성)폭력에 대한 조직적인 은폐나 묵인·방조 시에 연맹을 즉시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체육인들은 “지금까지 스포츠계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행동을 취해왔다”며 “대책 마련으로 부산떨기 보다 확고한 실행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규엽 박구인 이현우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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