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영옥]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자신감 기사의 사진
국민소득 1만 달러에 불과하고 독립 30년이 안 된 카자흐스탄,
그 나라의 역사·미술을 알리는 두 전시가 나란히 한국에 왔다

자국 문화를 알리려 자신 있게 해외로 나선 저개발 국가,
이것은 국가의 책무이고 우리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세계의 문화 수도는 변해왔다. 르네상스 들어선 이탈리아 로마였다. 16세기 로마는 기독교를 믿는 세계 각국 대사와 공사들이 몰려들며 외교와 금융의 중심지가 됐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거장들을 로마로 불렀던 때가 이 시기였다.

모름지기 화가는 로마로 유학 가야 출세할 수 있었다. 19세기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런 예다. 로마에 갔다 온 그는 “로마에서 내 무지스러움이 부끄러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유학파 다비드의 명성은 파리가 세계 미술 수도가 되는데 일조했다. 이후 인상주의를 거치며 파리의 위상은 공고해졌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파리는 미술시장의 왕좌를 미국 뉴욕에 내줘야 했다. 1990년대는 영국 런던이 주목 받았으나 요즘엔 독일 베를린이 뜬다. 정부 예술지원정책과 싼 임대료 매력 등이 시너지를 낸 덕분이다. 그럼에도 ‘베를린=세계 미술 수도’로 연결 짓기엔 무리다.

그래서인가. 유럽 최대 경제 강국이 된 독일 정부의 자국 미술 띄우기 노력이 대단하다. 국제교류처(IFA)를 통해 전시를 기획, 10년 장기프로젝트로 해외 순회전을 연다. 순수예술에서 건축, 디자인을 망라한다. 또 독일이야, 싶을 정도로 정부가 펌프질 한 전시가 자주 있다. 심지어 1970∼90년대 독일에서 유학했던 외국 작가들 작품까지 나랏돈으로 구입해 해외 순회전을 갖는다. 2016년 서울대미술관에서 연 ‘아트스페이스 독일’전이 그것이다. 한국이 낳은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도 포함된 이 전시는 독일이야말로 세계적 작가를 배출한 비옥한 문화적 토양이라는 자랑인 셈이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이라니. 세계 9위의 광활한 국토 면적을 자랑한다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를 조금 넘는 이 나라에 매력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 나라 미술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미술을 알리는 두 개 전시가 지금 한국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황금의 땅-카자흐스탄’전과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포커스 카자흐스탄-유라시안 유토피아’전이 그것이다. 전자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까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라면, 후자는 자국의 근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춘 자리다. “우리는 초원에 사는 사람들이라 부자들이 차려야 할 예의 같은 것은 없다.” 칸국 시대의 통치자 카심 칸(1455∼1521)이 남긴 말에서 보듯 도자기, 장신구 등 고대 유물은 좋게 보면 호방하지만, 정교하거나 세련된 맛은 없다. 근대미술도 우리의 일제강점기 미술처럼 서구의 근대를 수용하기 급급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카자흐스탄은 18세기 이래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오다 옛 소련 붕괴 이후 1991년 카자흐스탄공화국이 됐다. 독립한 지 채 30년이 안 되는 나라가 자국 역사와 문화를 알리겠다니,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총감독을 맡은 국가 프로젝트로 전해진다. 3선인 그는 2017년 ‘영혼의 깨달음’이라는 다소 거창해 보이는 주제의 문화 프로젝트를 주무 부처에 지시했다. 자국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키고 그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라는 취지였다. 카자흐스탄 문화체육부와 국립박물관이 제안한 게 두 전시였다. 특히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전시는 지난해 런던, 베를린, 뉴저지 등 4개국 도시에서 선보였다. 5년간 이어지는 순회전인데, 올해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려 전 세계의 미술인이 모여드는 베니스로 간다.

‘영혼의 깨달음’ 프로젝트에는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인물 100인을 뽑고, 역사·철학·경제·문학 등 분야별 세계적 교과서 100선(選)을 번역·배포하는 사업도 있다. 외부에서 알아주거나 말거나 스스로 국가적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 역사의 우물 저 깊숙이 두레박을 내린 위대한 나라 건설 프로젝트로 읽힌다.

문재인 대통령은 1년8개월 전, 대통령 취임사에서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언급한 바 있다. 무엇으로 그 위대함을 느끼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 부족한 건 국가적 자신감이다. 나라 밖에서 상을 받아야 잘난 줄 안다.

전통과 문화는 국가 자존감의 뿌리이다. 우리 역사의 우물을 들여다보자. 이를테면 고려자기와 나전칠기를 수출한 ‘문화 한류의 원조’ 고려는 자랑할 역사다. 실질적인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였고, 남녀 차별이 적었고, 수도 개경은 서역 상인이 누빈 국제도시였고, 외국인을 관료로 채용했던 다원사회였다. 21세기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모델 같은 역사였다.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건 나라의 책무다. 카자흐스탄에서 배우길 권한다. 마침 ‘황금의 땅-카자흐스탄’전과 ‘고려 1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같은 장소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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