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나’를 보고 싶다… 예능도 에세이도 ‘평범함’이 대세 기사의 사진
요즘은 TV를 켜나 서점에 가나 나와 우리 식구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엄마 같은 사람들이 깔깔대며 수다를 떨고, 내 동생 같은 젊은이들이 출연해 여러 이야기를 한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에세이 저자 중에는 내 친구 같은 이들이 눈에 띈다. 예능 프로나 에세이는 ‘평범함’이 대세인 듯하다.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SBS)는 매주 20% 전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예능 왕좌를 지키고 있다. 2016년 8월 첫 방송된 미우새는 박수홍 김건모 토니안 등 연예인의 어머니가 화자다. 어머니들이 아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형식이다. 어머니 또래의 장년층을 중심으로 젊은층까지 폭넓은 시청자를 자랑한다. 미우새의 가장 큰 매력은 구수하고 소박한 어머니들의 입담이다.

최근 이 프로에 합류한 트로트 가수 홍진영의 어머니도 그렇다. 홍진영이 새해를 맞아 언니인 선영과 등산을 하러 간다. 체격이 큰 선영의 롱패딩에서는 귤, 오이, 초콜릿과 같은 간식이 계속 나온다. 어머니는 “오메, 끝도 없이 나오네”라며 얼굴을 붉힌다. 선영이 등산을 포기하자 다른 어머니들은 “그만하면 잘했다”고 입 모아 칭찬한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지난해 3월 첫선을 보인 ‘전지적 참견 시점’(MBC)은 연예인들의 매니저가 주요 화자가 되는 프로그램이다. 이영자 유병재 박성광 양세형 등의 매니저들이 담당 연예인의 일상을 들려준다. 관심의 초점은 연예인이지만 재미는 이 범상한 매니저들의 시선과 태도에서 온다. 이영자의 매니저 송성호 팀장은 먹고 또 먹는 이영자의 어마한 평소 식성에 자주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영자는 얼마 전 ‘MBC 연예대상’ 시상식을 앞두고 긴장된다는 송 팀장에게 “청심환보다는 든든하게 소고기를 먹어라. 1인분은 든든함이 없다. 2인분 이상은 먹고 와야 한다”고 해 송 팀장을 놀라게 한다.

박성광 매니저 임송씨는 근검절약하는 생활 습관을 자랑한다. 연말에 박성광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저녁을 대접할 마음을 먹는다. 내심 식사 값을 걱정하던 임씨는 박성광이 자신을 대신해 미리 결제한 걸 알게 된다. 매니저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제가 사드리려고 했단 말이에요”라고 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친구나 동료의 모습 같다.

‘한끼줍쇼’(JTBC)는 MC 강호동과 이경규가 예고 없이 평범한 가정집을 찾아 식사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서울 용산역 부근, 마곡지구, 경기도 광명 등 곳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식탁을 엿볼 수 있다. 이웃이 주인공인 셈이다. 이들 세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관찰 예능 콘셉트에 평범한 ‘내’ 이야기를 하는 일반인이 있다는 점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수년째 일상에 대해 쓴 에세이가 인기다. 대표적인 책은 2016년 8월 출간된 ‘언어의 온도’(말글터). 기자 출신인 저자가 일상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에 대해 쓴 글 모음이다.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과의 싸움보다는 자신과 잘 지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읽는 이의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 이 책은 지난해 상반기 100만부를 돌파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와 아직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는 온전한 나로 사는 법을 조언하는 책이다. 저자 김수현은 “우리는 자기 자신 외에 그 무엇도 될 수 없고, 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치열한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해 6월부터 내내 잘 팔리고 있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는 어떤가. 이 책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던 작가 백세희의 상담 기록이다. 한 독자는 “한숨에 읽었다. 내 일기장이 아닌가 싶어서”라고 후기를 남겼다. 이 책은 그 정도로 평범한 이들의 우울과 불안을 꾸밈없이 표현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쟁에 대한 피로감 속에서 이 책들은 일상의 소중함을 나누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나’를 추구하는 트렌드는 몇 해 전부터 주목받아 왔다. 미국의 트렌드 전망기관인 케이홀은 이런 분위기를 ‘놈코어(normcore)’라고 명명했다. 놈코어는 평범을 뜻하는 ‘노멀(normal)’과 철저함을 가리키는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다. 처음에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자신만의 멋을 담는 패션 스타일을 지칭했다. 검정 터틀넥에 청바지를 즐겨 입던 스티브 잡스가 그 예다.

하지만 이 트렌드는 소비 전반으로 퍼지면서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놈코어의 연장에서 요즘 사람들은 평범함에서 행복을 찾는다”며 “미우새 등의 인기는 평범한 ‘나’의 세밀한 감정과 일상을 담는 문화 콘텐츠가 선호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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