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라동철] 간송 전형필! 손혜원은? 기사의 사진
간송(澗松) 전형필(1906~62)은 국내 사립미술관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간송미술관을 일군 인물이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선대의 재산을 물려받아 조선의 내로라하는 거부가 된 그는 일제 강점기에 서화, 도자기 등 전통미술품 수집에 매달렸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미술품은 당시 기와집 수십채 값을 주고서라도 사들였다. 그렇게 수집한 미술품 중에는 국보와 보물급이 즐비하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후 자음과 모음의 원리와 사용법을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비취색 표면에 69마리의 학과 구름 문양을 새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제68호),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 30점을 묶은 혜원전신첩(제135호) 등 국사 교과서에 실린 진귀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간송미술관은 매년 봄, 가을에 2주씩 연중 4주간 문을 열어 소장품을 일반에게 무료로 공개해 왔다. 그러다 2014년 3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을 계기로 DDP에서 ‘간송문화전’이란 타이틀로 외부 전시회를 열고 있다. 1부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열한 번의 기획전이 열렸고 지난 4일부터 마지막 기획전이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란 이름으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 영국인 국제변호사 존 개스비로부터 일괄 구입한 도자기 20점 가운데 12점(국보 4점 포함) 등 6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3월 31일 이번 전시가 끝나면 예전처럼 봄·가을 전시로 돌아갈 예정이다. 후대들이 귀중한 문화재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간송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우리 문화재에 아낌없이 투자했고 6·25전쟁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지켜낸 덕분이다. 골동품은 누군가에게는 돈벌이 수단이다. 간송이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많은 무가지보(無價之寶)들이 지금처럼 살아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요즘 손혜원 의원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을 무더기로 매입한 것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부동산 투기라는 주장에, 손 의원은 목포의 근현대 문화재를 보호하려고 사들인 것이지 결코 투기가 아니라며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투기 여부를 가르는 것은 매입 목적일 텐데, 진심을 알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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