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의 굴욕, ‘외국계 기업사건=김앤장 수임’ 관행 깨졌다 기사의 사진
국내 로펌업계 부동의 1위로 꼽히는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서울 종로구 본사. 로펌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형 로펌업계에도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국민일보DB
지난달 1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 국내 이동통신사에 대한 ‘갑질’ 혐의를 받고 있는 애플코리아에 대한 첫 번째 전원회의가 열렸다. 애플 대리인석에는 2개의 법무법인(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앉았다. 이날 ‘태평양’ 소속 변호사들은 활발한 변론을 펼쳤다. 그러나 태평양 뒷자리에 앉아 있던 ‘김앤장’ 변호사들은 3시간 넘게 진행된 전원회의 내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국내 로펌업계 부동의 1위인 ‘김앤장’이 애플 불공정행위 사건에서 조연 신세가 됐다. ‘외국계 기업 사건=김앤장 수임’이라는 오래된 관행이 사실상 처음 깨진 셈이다. 김앤장은 지난해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는 네이버와 구글이 모두 사건 대리를 요청했을 때 구글을 택할 정도로 외국계 기업 관련 사건에 강점과 애착을 보여 왔다.

2016년 공정위가 애플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당시만 해도 김앤장은 ‘메인’ 대리인이었다. 그러나 공정위 현장조사 과정에서 보조 대리인이었던 태평양과 김앤장의 처지가 뒤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20일 “거래상지위남용 등 주요 혐의에 대한 대리는 태평양이, 조사방해 등 부수적 사건은 김앤장이 맡는 것으로 업무가 분장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이 태평양을 ‘중용’한 이유에 대해 공정위 안팎에서는 태평양의 공격적인 영업전략이 주효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공정위 현장조사 과정에서 조사 내용 파악에 원칙적으로 대응했던 김앤장의 태도가 원인이 됐다는 설도 있다. 태평양은 4~5년 전부터 공정위 전관(前官) 출신을 적극 영입하면서 공정거래 사건에 강점을 보여 왔다. 공정위 핵심 관계자는 “태평양의 경우 어떤 때는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어그레시브(공격적)하게 영업과 변론을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형 사건의 경우 로펌 수임비용은 매달 3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애플의 법적 대응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애플이 제기한 공정위에 대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이나 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제기됐을 경우 본안에 대한 판단 없이 재판이 종결되는 것이다. 이 소송의 대리는 태평양이 단독으로 맡았다. 태평양은 소장에서 피고를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닌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기재했다. 한 변호사는 “피고를 처분을 행한 행정청으로 한다는 것은 행정소송법의 기본 중 기본”이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면서 피고를 박원순으로 적은 격”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각하 결정이 내려진 2주 후 재판부에 판결문 열람 제한을 신청했다.

애플 사건 대리와 관련, 김앤장 관계자는 “공정위 전원회의 준비 과정에서 태평양과 동등한 지위에서 변론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심판정에서 프레젠테이션 등 변론을 태평양이 주도한 것은 두 로펌이 모두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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