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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했건만

[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했건만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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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변=은, 침묵=금이라 했는데 말 많아지는 게 노화 신호인가
나도 요즘 부쩍 말 많아져 걱정, 당장 ‘말수 줄이기’ 돌입해야지


1994년 추석 무렵으로 기억된다.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워싱턴DC 외곽 한식당에서 기자 몇 명과 저녁을 함께했다. 2년 전 대통령 선거에 패하고 정계은퇴한 상태지만 내심 차기 대선을 노릴 때였다.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음일까. 기자가 한 마디 물으면 열 마디, 스무 마디 아니 10분, 20분씩 장광설로 답했다. 국내 정치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북핵 해법을 포함한 국제정세, 한·미 관계, 자신의 과거 정치 행적에 대해서는 거침이 없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다변(多辯)이었음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모처럼 만난 젊은 기자들의 의견도 경청하는 열린 정치인이면 좋으련만…. 자리를 파하면서 나는 동석했던 동교동 핵심 인사에게 결국 한소리 하고 말았다. “오늘 보니 DJ 선생 안 되겠어요. 너무 말이 많으셔. 역시 70세는 노인인가 봐요.” 당시 김대중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던 ‘고령’을 건드렸으니 발끈한 건 불문가지다. “야, 나한테 한번 죽어볼래. 니들이 잘 모르니까 자상하게 설명해주시는 거지.”

김대중 같은 정치인이야 말로 먹고사는 사람이니 사실 말 많은 게 이해가 된다. 자신을 홍보하고, 자기주장을 펼치려면 입을 열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하지만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다변은 결코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 공사석 막론하고서다. 반드시 발언해야 할 시점에 침묵을 지키는 것도 문제지만 남의 말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해대는 건 꼴불견이다. 생각의 가벼움에다 신뢰의 결여를 느끼게 한다.

말수를 줄이고, 대신 경청하라는 건 동서고금의 일치된 가르침이다. ‘창조주가 사람의 귀를 두 개 만드는 대신 입은 하나만 만든 이유를 생각해보라’는 경구, 자못 울림이 크다. 성경에는 말을 적게 하라는 구절이 자주 나온다. 잠언에는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진다”고 기록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 많은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며 남에게 잘 보이려고 기도를 길게 하는 행태를 강하게 꾸짖었다.

소크라테스식 산파술. 자기주장이 옳다고 떠들거나 가르치려들기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 상대방을 스스로 이해시키는 방식, 얼마나 효과적인 대화법인가. 탈무드엔 ‘입보다 귀를 더 높은 위치에 놓아라. 입은 적을 만들고 귀는 친구를 만든다’고 전한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란 서양 격언은 언제 들어도 가슴에 와 닿는다. 미시간대학 총장을 38년이나 재임한 제임스 B 앤젤은 퇴임을 앞두고 오랫동안 중책을 유지한 비법을 묻는 기자 질문에 ‘나팔보다 안테나를 높이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구성원들의 온갖 요구사항과 불만을 성능 좋은 안테나를 통해 경청했다는 얘기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을 통해 이렇게 가르쳤다. “많은 말과 많은 생각은 마음에 해롭다.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다른 사람과 마주하면 말을 가려서 간결하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 때에 맞게 행동한 후에 말을 할 경우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간략한 사람이야말로 도리에 가까운 법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 과언무환(寡言無患)은 결코 빈말이 아닐성싶다.

한창 활동할 시기 말 많은 건 또 이해가 된다. 사업을 하거나 직장생활 하다보면 자기 홍보 필요성을 느낄 때가 많다. 다변은 왕성한 사회활동의 표현일 수도 있다. 집에서 가족끼리 대화하며 떠드는 건 또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귀담아들을 필요조차 없는 잡소리일지언정 가족 구성원 간 친밀도를 높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게다.

문제는 나이 들면서 남 앞에서 괜스레 말이 많아지는 경우다. 이는 기본적으로 ‘너희는 모르지. 나는 안다’ 식의 자기과시적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치 가르치려 드는 꼴이다. 지식으로든 지혜로든 대화 상대가 수준이 더 높을 경우 짜증나지 않겠는가. 마주 앉은 사람이 젊은이라면 꼰대란 소리 듣기 십상이다. 다변은 자기자랑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기에 더더욱 경계할 일이다. 상대가 시기질투심을 느낄 경우 분위기가 싸늘해질 수도 있다. 경로당에서 ‘손주 자랑하려면 만원 내놓고 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관심도 없는, 듣고 싶지도 않는 얘길 왜 하느냐는 뜻 아니겠나.

남 얘기 할 때가 아니다. 나도 언젠가부터 부쩍 말이 많아졌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평한다. 노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찔하다. 나도 어느새 나이 참 많이도 먹었지만 만(滿)으로는 아직 오십줄인데….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했건만 벌써 그게 잘 안 지켜지려 하니 문득 걱정이다.

나도 어릴 적엔 말이 적은 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보내는 학기말 통신문에는 ‘과묵하고 성실하다’란 평이 자주 실렸다. 내심 ‘과묵’이라는 표현이 싫었다. ‘말 잘하고 활달하다’ 뭐 이렇게 평가해주면 좋으련만…. 상급학교에 가서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나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나 보다. 원래 말주변이 없었기에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 내가 왜 말이 많아졌을까. 요즘 가끔씩 해보는 자문(自問)이다. 직장에서 간부가 돼 회의를 주재하거나 식사자리를 주도하는 경우가 잦다보니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모임, 친척모임에서도 말수가 눈에 띄게 늘었으니 정답은 아닌 듯하다. 역시 노화현상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인 규명과는 별개로 당장 오늘부터 ‘말수 줄이기 작전’에 들어가야겠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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