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세욱] 스포츠 폭력과 SKY캐슬 기사의 사진
“4년 전 동메달을 땄을 때 기분이 좋았는데 주위 반응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금메달과 동메달 차이가 그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유도 60㎏급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호의 당시 소감이다. 올림픽 동메달 획득도 영광인데 사람들의 반응은 확연히 다르더라는 것이다. 지금도 별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은메달·동메달리스트들은 경기 후 “금메달을 못 따 미안하다”는 말을 상투적으로 해댄다.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든 메달리스트들의 모습을 이렇게 많이 보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체육계에서 달라지지 않는 것은 또 있다. ‘스포츠 지도자 영구제명 조치’ ‘여성 지도자 할당제 도입’ ‘합숙 훈련 개선’. 이는 2008년 2월 정부가 발표한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이다. 올해 심석희 성폭행 파문 이후 정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낸 대책과 판박이처럼 유사하다. 11년간 정부와 체육 당국은 빈말만 해온 셈이다.

2008년의 최민호와 스포츠 성폭력은 별개의 사례다. 하지만 이 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있다. 바로 성적 지상주의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마저 기죽일 정도의 ‘금메달 제일주의’는 각 종목, 특히 메달 유망종목의 코칭스태프들에게 암묵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도를 요구한다. 성적을 내기 위해 강한 훈련이 필요하고 폭력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 정도로 치부된다. 성폭력은 선수를 휘어잡기 위한 극단적 수단이었다. (성)폭력의 피해자들은 당장의 순위, 자신의 경력을 위해 침묵하도록 내몰린다.

전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신유용은 코치에게 성폭행당한 뒤 “이거 말하면 유도계 선수생활 끝이다. 잘 생각해라”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여자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도 악몽과 같은 선수생활을 한동안 말없이 보냈다. 폭로했다가 운동선수로서의 삶이 끝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체육 당국은 혹시나 메달 전선에 불똥이 튈까 봐 문제를 수수방관한다.

성적 지상주의, 제왕과 같은 권력을 움켜쥔 절대자, 그 밑에서 복종만 강요당하며 기계처럼 단련된 존재들. 이쯤 되면 TV 시청자들이 떠올리는 프로가 있다. 바로 요즘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SKY캐슬(스카이캐슬)’이다. 명문대, 그중 금메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에 자식을 보내기 위한 상류층의 입시전쟁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서울대 입학을 장담하며 전권을 휘두르는 입시 코디네이터, 아들 친구가 살인범으로 몰리자 아들의 내신 등급이 오를 거라며 좋아하는 로스쿨 교수, 딸이 누명 쓴 친구 때문에 가슴 아파하자 서울대 의대 진학을 위해 신경 끄라는 엄마.

현실을 과장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글 같은 입시경쟁과 그 결과에 따른 사회의 차별 대우를 경험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픽션으로만 보지 않는다. 스카이캐슬이 지난 19일 비지상파 방송 프로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이 같은 감정이입 때문이었으리라.

사람들은 요즘 성추문이 잇따른 체육계를 시대착오적 별종 집단쯤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가 단순히 체육계의 일탈로만 볼 수 있을까. ‘스포츠는 민족 자부심의 원천이 됐다. 우리는 열광에 호들갑을 더하고 자화자찬을 넘어 자뻑의 무아지경에 이른다. 스포츠 성과를 국가 발전으로 착각하면서 국가를 위해 개인(선수)이 희생될 수 있다는 야만적 무의식마저 불러들였다.’(정희준의 ‘어퍼컷’) 스포츠를 즐기기보다 상대를 이기기만을 바라고, 과정보다는 결과와 메달 색에 더 관심 가져온 우리의 모습도 문제 아니었을까.

스포츠 (성)폭력의 근원과 스카이캐슬의 민낯은 어쩌면 이란성쌍둥이일지 모른다. 경기 성적(가족의 명예)을 위해 개인의 인권을 희생시키며 금메달(서울대)을 지향하는 의식이 남아 있는 한 변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제2의 심석희·신유용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체육계만 나서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