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상병] 지방의회 현실이 너무 위태롭다 기사의 사진
“철면피 예천군의회 의원들을 배출한 예천 군민으로서 몸둘 바 모르는 부끄러움으로 대국민 사과를 드립니다.”

최근 국외연수 중 가이드를 폭행하고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 등의 추태를 부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경북 예천군의회 건물에 걸려 있는 대형 현수막 글귀이다. ‘군의원들의 자진사퇴를 바라는 예천 군민들’은 이렇게 ‘대국민 사과문’을 걸어놓고 농성과 시위 등을 반복하며 ‘전원 사퇴’를 위한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예천군의회 의원들은 사퇴는커녕 아직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뒤늦게 윤리특위를 구성해 몇 명에 대한 징계 문제를 논의한다지만 이미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민주화 이후 지방의회 역사상 ‘최악의 윤리 참사’로 기록될 만한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의원들의 인식은 안이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국민 여론은 물론이고 예천군민들의 상처 난 자존심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렇게 미적거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노의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해당 의원들을 퇴출시킬 방법은 마땅치 않다. 기초의원은 주민소환투표 청구 대상이긴 하지만 임기 개시 1년이 경과되지 않아 청구제한기간에 걸린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제명을 통해 의원직 퇴직을 강제할 수 있지만 동료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대부분 형님 동생 했던 이웃 동네, 같은 당 소속이며 국외연수도 함께 했던 당사자들이다. 군민들이 의원 9명 모두의 동반 사퇴를 요구하는 이유라 하겠다.

한국의 지방의회는 무엇보다도 구조적인 한계가 너무 크다. 예천군의회에서 보듯 견제나 감시 기능이 매우 취약하다. 정당 추천으로 견제와 경쟁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대부분 특정 정당 독점이거나 아니면 나눠먹기 구조에 불과하다. 두 번째는 지방의원 공천권이 사실상 지역구 국회의원에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의 목소리나 여론보다는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충성도가 더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그들의 윤리 문제는 누구도 통제하기 어렵게 돼 있다. 공천을 한 정당이나 국회의원도 자칫 흙탕물이 튈세라 나서기를 꺼린다. 당사자가 탈당해 버리면 속수무책이다. 지방자치법에는 ‘윤리특위’ 규정을 두고는 있지만 ‘그들끼리’하는 윤리 심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마저도 ‘강제’가 아니라 ‘둘 수 있다’는 정도의 권고일 뿐이다. 주민소환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이런 현실에서 지방의회의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 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예천군의회를 향한 민심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기초의회를 폐지할 수는 없다. 정당정치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기초의회에 다양한 인물군이 진입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부터 바꾸는 일이다. 선거구를 잘게 쪼개서 한두 명이 차지하는 방식은 최악이다. 중앙정치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손에 공천을 맡겨서도 안 된다. 기초의원을 지역구 국회의원의 선거운동 조직원으로 일하게 할 수는 없다. 중앙당 차원에서 엄격한 기준과 심사를 통해 공천하되 자질과 도덕성 문제도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한 가지 더 강조할 부분은 지방의원들의 윤리 문제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방분권’이라는 미명 하에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기하는 것은 책임정치 포기에 다름 아니다. 임의 규정인 윤리특위 구성을 의무화하고 특위 구성을 의장 직속의 독립적인 외부 인사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견제가 가능하다. 의정활동비와 국외연수 등의 업무까지 윤리특위가 감시하도록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또 쉽게 탈당할 수 없도록 제한 규정을 두고 윤리심판에 대한 당의 역할과 징계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출당 조치가 내려지면 재보선 후보를 공천하지 못하게 하고 지방의회의 윤리특위와 연계해서 징계를 더 엄정하게 할 수 있도록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는 관련 법률이 미비하고 구조적 한계가 워낙 큰 상황이다. 지방의회와 의원들 각자의 양심과 의지에만 맡겨 둬서는 개혁은 요원하다. 그러기에는 우리 지방의회의 현실이 너무 위태롭다.

박상병(인하대 초빙교수·정책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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