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1운동 직후 日언론 “조선 무단통치 잘못” 기사의 사진
1919년 3월 28일자 일본 요미우리신문 사설. 빨간 줄이 쳐진 부분에 ‘병합 이래 9년 가까이 이어진 무단통치는 우리의 위력을 지나치게 과시했다. 일본 통치에 비분강개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양현혜 이화여대 교수 연구팀 제공
3·1운동 직후 일본 내부에서 자국의 무단(武斷)통치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주요 매체 보도를 모두 수집해 이 같은 흐름을 확인한 건 처음이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1910년부터 헌병을 동원해 강압적이고 비인도적인 무단통치를 시행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식민통치 방식과 관련해 “조선을 억압하고 차별대우했다”는 목소리까지 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3·1운동이 전국적인 저항운동으로 확산되고 식민지배 실상이 국제사회에 알려지자 일본 지식인 사회가 당황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내용은 양현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연구팀이 1919년 일본 언론 13개 매체가 보도한 기사 3007건을 수집·분석한 ‘3·1운동 관련 일본 언론매체 사료집’에 담겼다. 일본 다수 매체를 총망라한 3·1운동 사료집 발간은 처음이다.

일본 언론은 독립만세운동이 전국 도시를 넘어 농촌에까지 번졌던 3월 말부터 무단통치의 실효성을 본격 비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3월 28일자 사설에서 “병합 이래 9년 가까이 이어진 무단통치는 우리의 위력을 지나치게 과시했다. 일본 통치에 비분강개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 주둔군은 물론 관리와 소학교 선생도 장검을 차고 시가를 활보하고 있다”며 “아무리 무지한 야만인일지라도 어찌내심 유쾌할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4월 8일자 기사에서는 에기(江木) 헌정회 총무를 인용해 “조선 폭동 사건은 가볍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고 조선 통치에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의심할 여지가 있다”며 “조선에도 문화가 있는데 무조건적 동화주의는 문제이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친정부 성향의 국민신문 4월 22일자 투고문에도 “조선통치는 절대적 전제정치로 인민에게 추호의 참정권을 주지 않고 인민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 교수는 21일 “이 시기 대부분이 이런 논조로 보도했다”며 “다만 무력 진압을 지지하면서도 조선총독부의 실정(失政)을 질책한 것으로, 도덕적 반성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3·1운동이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자 그 원인을 일본 내부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며 “3·1운동의 의의와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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