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도 체육계 인사가 ‘미투로 금메달 못 따면 책임질 거냐’” 기사의 사진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이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며칠 전 한 체육계 인사가 술자리에서 ‘미투 때문에 도쿄올림픽 때 금메달 못 따서 20위권으로 밀려나면 책임질 거냐’고 스포츠 성폭력 공동대책위원에게 말하더군요. 스포츠 미투로 세상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현장에선 당장 금메달과 국위선양이 중요한 겁니다.”

하키 선수 출신 함은주(45)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지난 1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각종 ‘미투 대책’을 부리나케 내놓고 있지만 ‘스포츠=금메달’로 인식하는 한 체육계 성폭력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학에서 스포츠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함 위원은 대학 1학년까지 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시민단체 문화연대의 체육 분야 집행위원으로 심석희 선수의 폭로 이후 젊은빙상인연대 등과 함께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함 위원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체육계 성폭력 대책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2008년 박찬숙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가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지적했을 때에도 비슷한 대책이 나왔지만 비극은 반복됐다. 그는 “성폭력 가해자는 체육협회 등의 임원이 될 수 없도록 규정이 만들어졌지만 꼼수로 징계 수준을 낮춰 가해자가 협회 임원으로 돌아오는 게 지금 상황”이라며 “대책이 나와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원인으로 ‘스포츠를 국위선양의 도구로 보는 뿌리 깊은 인식’을 꼽았다. 함 위원은 “체육진흥법 1조는 체육 진흥 목적을 국위선양으로 본다”며 “금메달을 딴 종목만 지원하는 등 여전히 모든 스포츠 정책, 성과 평가가 금메달 개수로 논의된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 아래 선수는 성적을 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성과만 내면 감독, 코치의 비인간적인 언행은 용서된다. 성폭력 피해를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함 위원은 “어느 선진국에서도 스포츠의 목적을 국가에 두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체육’이 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현장에 있는 선수와 생활체육 지도자들, 학자,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스포츠를 바라보는 국민 정서도 바뀌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함 위원은 “스포츠 미투 이후 빙상 종목 등 기존 메달을 잘 따오던 종목에서 성과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때 국민들이 비난한다면 또 다시 ‘금메달 우선주의’ 체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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