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지역 리포트] 일제강점기 훼손 전 그 모습 그대로… 민족정기 되살린다 기사의 사진
경북 안동시 임청각의 지난해 늦여름 풍경. 사진 왼쪽 임청각 앞으로 놓인 중앙선 철로 위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일제는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였던 임청각을 전면 철거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부속건물만 철거한 뒤 임청각 앞마당에 중앙선 철길을 놨다. 임청각 복원·정비사업은 중앙선 철로 이전 및 철거부터 시작된다. 안동=남호철 여행전문기자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철저한 고증과 신중한 논의 끝에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臨淸閣·보물 제182호)이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된다. 경북 안동시는 임청각을 7년 동안(2019∼2025년) 사업비 280억원을 투입해 일제강점기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정비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지난해 말 마무리했다.

안동시는 현재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로 개설을 이유로 훼손되기 이전의 임청각과 그 주변을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정비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1763년 문집 ‘허주유고’ 속 그림인 ‘동호해람’과 1940년을 전후해 촬영된 사진·지적도 등 고증이 가능한 자료를 근거로 종합적인 복원·정비 계획을 마련했다. 동호해람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조상인 고성 이씨 허주 이종악(1726~1773)이 발간한 문집 ‘허주유고’ 속에 임청각과 그 주변 전경을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복원·정비계획은 2017년 11월 2일 임청각 종손과 문중대표, 지역 전문가, 문화재위원 등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4차에 걸쳐 논의했고 지난해 8월 16일 열린 문화재위원회의(건축문화재분과)의 검토도 거쳤다.

종합정비계획에 따르면 임청각 복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주변에 멸실된 임청각의 분가(출가한 자식들의 가옥) 3동을 35억원을 들여 복원하고 철도 개설로 훼손된 주변 지형과 수목, 나루터 등을 22억원을 들여 옛 모습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임청각 진입부에 석주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독립운동 과정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사업비 70억원을 들여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주차장과 화장실, 관람로, 소방시설 등 관람·편의시설도 말끔하게 재정비(23억원)할 계획이다. 이의 시행을 위한 토지 매입(70억원)과 시굴·발굴(25억원), 임청각 보수·복원(20억원), 설계용역과 기타(15억원) 등의 사업까지 합치면 총 280억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안동시의 설명이다.

복원·정비 사업을 하려면 가장 먼저 임청각 앞마당을 가로지르고 있는 중앙선 철로의 이전과 철거가 이뤄져야 한다.

철로의 철거 이전은 2020년까지로 예정돼 이전까지는 복원·정비를 위한 기본설계, 실시설계와 주변 토지 매입, 발굴조사 등 선행 사업을 먼저 실시한다. 철로 철거 이후인 2021∼2025년에는 훼손 건물 복원, 지형과 경관 복원, 편의시설 설치 등을 차례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문화재청은 임청각 복원·정비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 문화재보호구역 확대 조정안을 지난해 10월 관보에 공고한 데 이어 관계자와 지역민의 의견을 수렴한 후 지난해 말까지 고시를 마쳤다. 올해는 1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주변 토지 매입과 기본설계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문화재청과 경상북도, 안동시는 임청각 복원·정비 사업을 차질 없이 수행해 국민주권을 회복하고 독립정신을 기리는 살아있는 장소로 미래세대에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조형도 안동시 문화유산과장은 “문화재 정비와 함께 주변 가옥의 복원, 석주 선생 기념관 건립으로 철도 개설 이전 임청각의 모습을 되찾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임청각이 가지는 문화재 가치를 보존·정비함으로써 향후 안동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청각은 건물 그 자체도 소중한 문화재지만 그 속에 살다 간 사람들의 충정과 애환이 더욱 값진 역사적 공간이다.

고성 이씨 임청각 종손 이창수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청각 복원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우리의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는 것”이라며 “복원·정비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돼 임청각이 나라 사랑의 정신을 되살리는 미래세대 교육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독립운동가 9명 배출… 고성 이씨 가문 종택
임청각은 어떤 곳인가, 99칸짜리 처분… 독립 자금 사용


임청각은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이며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식솔들을 이끌고 임청각을 떠나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국내에서 의병투쟁과 애국계몽운동을 해봤지만 도저히 일제를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학식이 풍부하고 물질도 많았지만 그는 부귀영화를 걷어차고 국난 극복의 선봉에 섰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이고 99칸짜리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 노력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1907∼1997) 여사 슬하의 7남매 중 장남은 일본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와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졌다. 허은 여사는 훗날 회고록에서 “(나라에)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남 앞에 비굴함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선대의 긍지가 그들 핏속에 자존심으로 살아 있구나 싶다”고 썼다.

가문의 시련만큼 임청각도 고초를 겪었다. 임청각은 1519년 낙향한 고성 이씨 이명(석주 선생의 17대조)이 지은 집으로 원래는 99칸이었으나 지금은 70여 칸만 남아 있다. 일제는 임청각이 항일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던 만큼 1930년대 후반 중앙선 철도 부설을 핑계로 집 전체를 없애려 했다. 그러나 여론이 좋지 않자 전체를 없애진 못하고 행랑채 등 부속 건물을 철거하고 마당으로 중앙선 철길을 놨다. 임청각의 원래 모습이 많이 변형된 이유다.

한동안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져 있었던 임청각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주목 받았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6년 5월에도 이곳을 방문해 각별한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