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찬희] 1시간과 5초 기사의 사진
오전 11시30분에서야 ‘제증명서류 발급’이라고 적힌 창구 앞에 도착했다. 토요일이라 일하는 의사, 간호사가 부족하다보니 퇴원 수속을 밟는 데 50분이나 걸렸다. 키오스크에서 대기표를 뽑으니 화면에 ‘대기인원 20명’이라는 암담한 숫자가 뜬다. 낮 12시까지가 근무시간이라는데, 남은 시간은 고작 30분. 어떻게 해야 하나 한숨부터 나왔다. 종합병원에서 가족이나 자신이 퇴원하면서 보험금 청구 서류를 챙겨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일단 퇴원비 수납부터 하고 ‘퇴원 약’을 받기로 했다. 무조건 ‘본인’이 신분증을 제시하고 서류를 청구해야 한다는 설명에 어쩔 수 없이 항암치료를 받고 몸 상태가 바닥인 환자가 창구 앞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마의 시간’ 12시를 1분 넘겼을 때 겨우겨우 장애인증명서, 진단서, 입원사실증명서, 통원치료확인서를 떼는 데 성공했다. 가방에 서류를 고이 모시고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아차, 진료비 내역서를 깜빡했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뒷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창구 앞에 섰다. “진료비 내역서를 떼야 하는데, 어떻게 하죠?” “그건 원무과로 가세요.”

지하 1층 원무과로 부리나케 갔지만, 굳게 문이 닫혀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퇴원비 수납 창구 여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진료비 내역서 발급은 어디에서 해야 하나요?” “여기서 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진료비 내역서를 받았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외래진료비 내역이 없다. “그건 ‘일반 수납’ 창구에서 다시 받아야 합니다.”

대기표를 뽑고 다시 기다렸다. 무뚝뚝한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남자 직원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원하느냐”는 말만 반복했다. 서류를 받아 돌아서니 진 빠진 아내가 “어서 집에 가자”고 한다. 시계를 보니 그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4차 산업혁명이니, 정보통신기술(ICT) 시대니 하는데 보험금 청구 서류 때문에 이 난리를 쳐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병원과 보험사, 혹은 병원과 환자가 ‘디지털 문서’를 주고받을 수는 없을까. 보험은 계약에 명시된 손실이 발생하면 보험금을 준다. 계약에 명시된 사건이 발생했는지, 계약 조건에 부합하는지, 발생한 손실 금액은 얼마인지를 검증하고, 계약에 따라 얼마의 보험금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따진다. 핵심은 ‘계약에 명시된 사건 발생의 증명’과 ‘손실 금액의 정확·객관성’이다. 그래서 일일이 병원과 주치의 확인을 얻고 주치의 혹은 병원 도장이 찍힌 서류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이 블록체인에서 이뤄진다면 어떨까.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 혹은 ‘투명한 공공 거래장부’라고 할 수 있는 블록체인에선 서로를 인증한 참여자들이 데이터를 주고받고 각자 장부에 그걸 기록한다. 블록체인의 장점은 저장한 데이터의 ‘위변조 불가능’, 누구나 인증을 거치면 참여할 수 있는 ‘개방성’에 있다. 병원-환자, 병원-보험사, 또는 병원-환자-보험사가 서로 인증하고 확인한 전자문서를 각자 장부에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다. 한결 편하게, 그리고 순식간에 보험청구 서류를 주고받는 일에서부터 보험금 지급까지 이뤄질 수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블록체인을 이용한 보험금 신청·지급이 처음으로 이뤄졌다. 환자는 알리페이에 접속해 진료비 등을 낸 뒤 관련 영수증을 보험사로 보냈다. 보험사는 5초 만에 97.63위안을 환자의 알리페이 계좌로 쏘았다. 보통 1개월이 걸리던 보험금 지급 기간이 확 줄었다. 알리바바그룹 금융 계열사 앤트파이낸셜의 블록체인 기술로 이뤄진 일이다.

블록체인의 위력은 생각보다 세다. 블록체인은 금융과 산업에서는 물론 공공행정, 일상에 엄청난 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이 짙다. 이제라도 정부가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 ‘혁신성장의 멍석’을 깔아주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변화가 고통이 되지 않으려면 ‘열차’에 빨리 올라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변화에서 ‘미래’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김찬희 경제부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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