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힘’으로 지켜낸 성장률 2.7%, 올해 전망도 하향 조정 가능성 기사의 사진
한국 경제가 ‘6년 만의 최저 성장률’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은행은 22일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7%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고군분투했지만 주력 제조업 경기 둔화, 고용 쇼크 등으로 맥을 추지 못했다. 반도체를 주축으로 하는 수출도 흔들리고 있다. 밝지 않은 앞길을 상징하듯 이날 인천신항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 야적장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인천=윤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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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22일 ‘지난해 4분기 및 연간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실질 GDP가 연간 2.7% 성장했다”고 밝혔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한은 발표를 앞두고 “2.6% 정도로 내려잡히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라고 평가했던 점을 고려하면 ‘서프라이즈’(의외의 반등)에 가까운 수치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글로벌 경기 비관론이 컸고, 한국의 수출 주력 상품인 반도체 가격은 나날이 하락세였다는 걸 고려하면 더 그렇다.

한은도 “시장의 평균 예상보다 높게 나온 측면이 없지 않다”고 촌평했다. 다만 민간보다 정부의 힘으로 사수한 성장률이라는 한계가 있음을 한은은 시사했다. 한은 관계자는 “경기 위축을 완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재정지출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충격적 숫자는 피했지만 어떻게 성장엔진을 확보할지는 과제로 남았다.

‘4분기’의 선방

예상을 깨고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2.7%로 지켜낸 건 4분기 덕분이었다. 4분기의 성적을 견인한 것은 건설·설비투자다. 한은에 따르면 4분기 GDP는 1.0% 증가했다. 반도체 등 전기·전자기기를 중심으로 수출이 감소했지만 민간과 정부에서 모두 소비지출이 늘었다. 특히 지난해 2, 3분기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건설투자와 설비투자가 ‘플러스’로 돌아선 영향이 컸다. 물론 연간으로 늘여놓고 보면 건설투자와 설비투자는 마이너스 성장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한은은 이날 발표에서 “지난해 4분기에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늘어났다”는 표현을 자주 했다. 학교 등 비거주형 시설 건설, 군 수송장비 등의 설비투자에서 정부가 연말 재정지출을 키웠다는 얘기다.

한은은 경제활동별로 성장률을 분석하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신조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서비스업 경제활동이 확대됐다는 대목이었는데, 한은 관계자는 “최근 워라밸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에 오락 및 문화서비스업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도 영향이 있다”며 주52시간 근로제 도입의 긍정적 효과를 지목했다.

4분기의 선전 속에서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 한은은 “속보치 성장률과 환율을 감안하면 지난해 1인당 GNI가 3만1000달러를 상회한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2006년(2만795달러) 처음으로 1인당 GNI 2만 달러를 돌파했었다. 이후 12년 만에 3만 달러를 넘긴 것이다.

‘정부 곳간’의 힘

지난 연말 ‘기저 반등’한 건설·설비투자에도 불구하고 저성장의 과제와 한계는 여전하다. 연간 2.7%라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전망치에 부합했을지언정 2012년(2.3%) 이후 6년 만의 최저치다. 2017년 3.1%를 기록했지만 1년 만에 다시 3% 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그나마 정부의 재정투입 효과가 컸다. 지난해 정부 소비는 5.6% 성장했는데 이는 2007년(6.1%) 이후 11년 만의 최고치다. 지난해 7월 지방정부 출범 이후 지출이 이뤄지지 못하던 것이 4분기에 집중됐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한은 관계자는 “정부의 경기 안정화 정책은 일시적이고, 지속은 쉽지 않다”며 “정부 정책과 더불어 우리 경제가 구조적인 측면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투 트랙’ 전략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전하는 수출은 불안요소다. 수출은 지난해 1~3분기 증가세였지만 4분기에 -2.2%로 역성장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새해 들어 1월에도 이런 부진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버팀목’ 반도체는 지난해 4분기 ‘어닝 쇼크’(실적 충격)에 빠졌고, 중국에 곧 추월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퍼지는 중이다. 한은 관계자는 “(수출 고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수출과 관련한 상세 전망을 곧 내놓겠다고 했다.

대내외 여건을 종합하면 ‘추세적 전환’을 예견하기 어렵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한은은 “지난해 4분기에 ‘치고 올라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한은은 24일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를 여는 한편 올해 경제 전망을 내놓는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와 같은 2.7%로 예측되지만 시장에선 ‘하향 조정’ 가능성을 제기한다.

“혁신 추구로 나아가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비용 충격에 따른 성장 저하’라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지난해 반도체가 한동안 호황 국면이었고, 반도체가 버텨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더욱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정부가 상당한 재정을 투입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인상 속도가 급격했다”고 꼬집었다. 대외 여건이 나빠지고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 단축된 근로시간 등이 충격을 줬다는 분석이다. 성 교수는 “정책의 궤도 또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부터 짙어진 고령화에 주목했다. 단기간 내 해결할 수 없는 고령화는 저성장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 교수는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든다는 점은 수요 측면에서도 내수 감소로 이어진다. 2.8% 정도로 가늠하던 잠재성장률도 2.5~2.6%로 내려잡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GDP는 결국 인구와 생산성을 곱해 산출된다. 일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다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면서 “‘지대추구형(별다른 노력 없이 독과점적 구조 속에서 수익을 얻는 것) 사회’에서 벗어나도록 혁신에 인센티브를 줄 때”라고 강조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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