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민태원] 두 유족 이야기 기사의 사진
두 유족이 있다. 하나는 의사의 유족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의 유족이다. 먼저 지난해 마지막 날 정신과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유명을 달리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의 유족 얘기다. 평소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려 힘써온 고인의 행적은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낳고 있다. 동료 교수들의 추모도 계속되고 있다. 고인을 취재 현장에서 한두 번 만난 적 있지만 그가 얼마나 훌륭한 의사이고 치유자였는지 뒤늦게 알게 되면서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고인의 유족이 우리 사회에 던진 배려 깊은 말들은 마음을 더욱 울린다.

유족은 피붙이를 잃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가해 환자와 진료실 안전을 방치한 사회를 향해 거칠고 사나운 언어로 분노를 쏟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의 분노를 경계하며 고인처럼 끝까지 타인을 배려하는 속 깊은 언행을 보여줬다. “안전한 진료 환경과 마음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도움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고인의 유지이며 그를 우리 곁에 살아있게 하는 방법”이라며 조의금으로 들어온 1억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유족은 이번 일로 정신질환자들이 격리와 배제로 내몰리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우리 함께 살아보자’는 고인이 남긴 말로 자칫 정신질환자를 향한 혐오에 빠질 수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다잡게 했다. 그렇기에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유족의 호소는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생전 고인의 뜻과 유족의 행보는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실천적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는 ‘임세원법’이라는 이름으로 27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여당과 정부는 2월 임시국회에서 이들 법안을 처리키로 하는 등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고인이 몸담았던 성균관대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고인이 개발한 ‘보고 듣고 말하기’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키로 했다. 학계에선 임세원상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모든 일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속 좁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의사라는 고인의 사회적 지위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환자의 유족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지난해 11월 22일부터 한겨울 추위에도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촉구하며 40일 넘게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유족이다. 이들 중에는 의료법을 개정해 수술실 CCTV 설치와 촬영 영상 보호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스물다섯 살 청년 고 권대희군의 어머니 이나금씨, 사망 등 환자 안전사고에 대해 보고 의무화를 내용으로 하는 환자안전법 개정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여섯 살 고 김재윤 어린이의 어머니 허희정씨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리수술과 유령수술 문제가 이슈화됐을 때 국회에선 관련법을 마련하겠다고 너도나도 나섰지만 잠시뿐 지금은 조용하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은 발의조차 안됐다. 의료계의 반대 때문이다. 의사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까지 더해져 유족들의 싸움은 더욱 외롭고 힘겹다. 고 임세원 교수와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국회와 정부, 사회의 적극적 움직임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환자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진료 환경이 의료인의 안전을 보장할 순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 임세원 교수의 유족이나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들이 요구하는 바는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 지금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고 임세원 교수가 생전 썼던 책 제목처럼 환자든 의사든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가 남긴 ‘우리 함께 살아보자’는 말을 기리고 실천해야 하는 건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다. 그 시작은 ‘함께 살아보자’고 호소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 생각을 ‘말하기’에서 비롯돼야 한다. 우리가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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