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최연혁] 한국사회 개조를 위한 창조적 파괴 기사의 사진
영국·네덜란드·프랑스와 스웨덴은 모두 창조적 파괴의 역사를 갖고 있어
노사·이념·갑을 갈등과 정치인들 이권 개입 난무하는 우리에게도 이런 과정 필요해


창조적 파괴를 대중화시킨 사람은 조지프 슘페터다. 2차 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942년 그의 책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초판이 출간되었다. 카를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 경제가 망하지 않고 건재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주류 경제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슘페터가 찾아내기 위한 복안이 바로 창조적 파괴라는 단어였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잉여가치를 점점 착취당하는 과정에서 결국 자본주의는 파멸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에게 파괴는 말살을 의미한다. 창조적 파괴는 폭력적 파괴와 강요된 파괴의 반대 의미를 지닌다. 파멸과 파괴는 마지막 종착지다. 폭력적 파괴는 남아있는 잉여적 가치까지 파괴하기 때문에 모두가 피해의 당사자가 된다. 슘페터는 창조의 개념을 파괴의 원인이 아닌 그 결과로 해석했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학자적 탁월함의 정수다.

경제에 독점 사용돼 왔던 개념인 창조적 파괴가 민주주의 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최초로 도시 간 맺은 평화적 협정으로 공화정 체제를 만들어낸 국가다. 스페인이라는 강국과 맞서기 위한 도시동맹이자 세계 최강의 무역회사 동인도회사를 주식회사로 만들어 세계에서 지배적 위치의 유지를 위해 만든 제도적 장치였다. 1600년대 최강의 국가는 영국과 프랑스가 아닌 바로 네덜란드였다. 그 창조적 파괴의 에너지는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이라는 또 다른 창의적 제도를 만들어냈다. 좌와 우, 그리고 노사 간의 간극은 사회를 둘로 쪼개 놓고 언어와 문화 간, 지역 간 그리고 계층 간을 조각조각 갈라놓았다. 1970년대 유가파동과 대규모 실업, 물가파동, 그리고 국제경쟁력의 상실은 다시 이들을 깨어나게 만들었다. 기존의 사회규범과 제도 그리고 기득권의 대항 체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만들어낸 민관의 합작품이 바로 바세나르 협약이다. 지금 네덜란드가 구가하고 있는 경제의 힘은 그때 만들어낸 창조적 파괴의 결과다.

영국은 1649년 세계 최초로 강력한 왕권을 누리던 찰스 1세를 단두대에 세웠다. 그리고 크롬웰은 공화정을 도입했다. 하지만 독재로 흘러 공화정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를 했지만 의회주의의 승리였다는 점에서는 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을 단두대에 세울 수 있었던 강력한 힘은 바로 그 반대편에 섰던 의회파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피에 흐르고 있는 창조적 파괴는 1689년 다시 한 번 발휘되었다. 권리장전은 의회가 세금 징수의 전권을 가지고, 체포와 구금 등을 왕이 명령할 수 없으며 군대 동원, 그리고 전쟁 선포 등도 의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약속이었기 때문에 현대적 의회주의의 씨앗을 놓아준 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즉 왕권이 더 이상 민권을 탄압하지 못하도록 권력의 전횡을 금지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이때 부산물로 발전된 것이 의회정당이다. 바로 민주주의의 창조적 파괴였던 셈이다.

프랑스혁명은 창조적 파괴였을까 아니면 폭력적 파괴였을까. 단기적으로 보면 왕정체제를 전복시키고 프랑스 사회를 학살과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폭력적 파괴의 단면을 가진다. 하지만 역사를 긴 호흡으로 보면 민주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공화정의 탄생과 민주주의의 중요한 세 가치, 즉 평등과 자유, 인류애라는 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에 창조적 파괴의 예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노동 손실이 높았던 1930년대 중반 정부가 멍석을 깔아주고 노사가 멋진 사회협약을 완성시켜 창조적 신제도를 만들어냈다. 당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던 불법파업과 직장폐쇄라는 노동쟁의의 무기는 중앙교섭이라는 창의적 제도를 만들어냈다. 바로 1938년 체결한 살트쉐바덴 조약 덕분이다. 그때 만들어진 중앙임금교섭단체와 노사 간 협의체제가 2019년까지 작동하고 있으니 이만저만한 창조적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후 스웨덴 전국 노조가 보여준 연대임금제 도입은 귀족노조가 보인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창조적 파괴의 산물이다.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았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노조는 한 몸에 받았다. 누군가가 가진 것을 놓고 스스로 파괴할 때 창조적 파괴는 시작된다. 더 큰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은 그 결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적 파괴다. 노사 간 갈등, 정당 간 끝이 보이지 않는 정쟁, 갑의 을에 대한 군림, 촛불세력과 태극기세력의 갈등, 안전사고의 공포와 정치의 무능, 그리고 정치적 특권을 가진 정치인들의 끊임없는 이권 개입과 무능력은 국가의 존립까지도 위협한다. 영국과 네덜란드, 그리고 스웨덴은 위로부터 창조적 파괴의 모습을 보여준 예다. 창조적 파괴는 기득권을 가진 쪽에서부터 시작되어야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프랑스가 보여준 아래로 시작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은 너무나 길고 당대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 힘든 고통일 수 있다. 어떤 창조적 파괴로 우리나라를 바꿀 것인가.

최연혁(스웨덴 린네대 교수·정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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