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강주화] “자식 말고 당신 인생을 살아” 기사의 사진
얼마 전 40대 회사원에게 들은 얘기다. 거의 1년 만에 회사 화장실에서 다른 지역 사무실의 동료와 마주쳤다. 그의 첫 마디. “집값 많이 올랐어?” 평범한 직장인의 관심이 부동산에 꽂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실 자녀를 둔 이들의 대화 주제를 들어보면 부동산 시세와 아이 교육 언저리를 내내 맴돈다.

특히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관심은 온통 입시다. 드라마 ‘SKY캐슬’이 비지상파 최고의 시청률을 경신하는 것도 바로 대학 입시를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입학을 목표로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한국의 많은 학부모가 자녀의 입시를 위해 어마한 사교육비를 쏟아붓는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SKY캐슬에서 한서진(염정아)은 상장을 늘어놓고 딸 예서에게 말한다. “너 네 살 때부터 놀러 한 번 안 가고, 잠도 4시간 넘게 안 자고 너랑 나랑 얻은 결과물이다. (학교 시험지 유출 사건을 공개해) 이 모든 것을 수포로 돌린 순 없다”며 울먹인다. 어머니가 자녀의 성적을 위해 자기 삶을 포기해 왔고 이제 기본적인 윤리도 포기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장면이다.

왜 예서 엄마는 아이와 함께 놀지도, 자지도 않았는가. 극 중에서는 시어머니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며느리의 분투로 그려진다. 사회적으로 보자면 한국 특유의 가족주의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와 책임의 기본 단위를 개인이 아닌, 가족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아이가 사고를 치거나 성적이 엉망이면 남편은 자식을 먼저 혼내지 않는다. 아내에게 “당신은 집에서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소리 지르고, 아내는 남편에게 “그러는 당신은 뭐 했냐”고 목청을 높인다. 공부는 자식이 하는 건데 부부가 대체 왜 싸우나. 압축적 근대화론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했던 사회학자 장경섭은 이를 두고 “한국의 가족은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정치·경제 활동의 최소 단위다. 가족은 기업처럼 각자의 교육, 생업 등에 공격적으로 개입한다”고 분석한다.

명문대 중심의 대학 서열이 공고하고 직업별 소득격차가 큰 우리 사회에서 대학과 전공은 가족이 함께 쟁취해야 할 ‘상징적 자본’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한서진이 딸 예서의 서울대 의대 입학에 매달리는 건 한국적 가족주의의 전형적인 표출이다. 관심은 그 목표 달성이 과연 가족에게 행복을 보장하느냐다.

드라마에서 이명주(김정난)의 아들은 서울대 의대 합격 후 잠적한다. 이명주는 아들을 찾아내지만 돌아온 말은 “서울대 의대 합격했잖아. 그게 소원이라며. 이제부터 내 인생 살 거야. 당신 아들로 살기 싫어. 지옥이었으니까”였다. 아들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이뤘다고 착각했던 이명주는 큰 충격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현실도 다르지 않다. 이승욱 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는 라디오 방송에서 “의대 인턴까지 끝낸 아들이 엄마에게 ‘당신의 아들로 산 세월은 지옥이었다’고 한 뒤 사라진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대학생은 42만명이 넘는다. 탈락 비율도 4.97%(2015년)에서 5.10%(2016년), 5.12%(2017년)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왜 그렇겠는가. 이 중에는 이명주의 아들 영재와 같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대학에 갔지만 어느 순간 이 선택이 내 인생이 아니라 부모의 욕망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대학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드라마 ‘SKY캐슬’에서 서울대 의대 출신인 예서 아빠 강준상(정준호)은 성공의 상징이다. 그는 지난 주말 자기 인생을 좌지우지했던 어머니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아내 한서진에게 당부한다. “당신도 예서 인생을 살지 말고 당신 인생을 살아.”

이 드라마가 한국 부모들에게 이런 주문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자식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을 살아라. 자식에게 꿈을 요구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꿈을 물어라.”

강주화 문화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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