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삶 기사의 사진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 등급 재심사를 받을 때의 일이다. 방문 조사를 위해 미리 시간 약속을 해뒀다. 그러나 조사원들은 약속보다 이른 시간에 찾아왔다. 활동보조인이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나는 척수 손상으로 인한 신경병증성 통증을 앓고 있어서 침상 생활을 하는 날이 많다. 그날도 통증이 심해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일어나 휠체어로 옮겨 앉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초인종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당황하니 늘 하던 일마저 뜻대로 되지 않아 휠체어에서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식은땀이 솟고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

조사원들은 두 팔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우므로 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혼자 옷 입고 세수하고 밥 먹을 수 있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게다가 현관문도 직접 열어주셨잖아요.” 조사원의 말에 그보다는 외출이나 목욕, 배변 활동을 혼자 할 수 없는 게 더 큰 문제이며, 아까도 혼자 현관문을 열어주려다 휠체어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척수장애인 중에선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생활하시는 분도 많아요.” 조사원의 단순 비교가 비난처럼 느껴졌다. “비장애인 중에서 선생님보다 높은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죠. 하지만 전 선생님이 그 사람들보다 무능하거나 나태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 말에 조사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꼭 그 일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결국 등급은 하락했다. 어쩌면 나는 그날, 항의 대신 내 부족함을 좀 더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했던 것일까.

서울 망우동에서 세상을 등진 모녀의 이야기를 접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모녀가 소득 열람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거나 공과금을 체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마치 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가난을 드러내고 증명하지 않았음을 탓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들에게 가난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최악의 상황에도 도움받을 길은 열려 있다는 걸 알려 사회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 수는 없었을까. 활동보조인 대신, 오랜 병간호로 무릎과 허리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엄마의 도움을 받아 목욕하는 내내 생각했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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