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로봇에 맞선 인간의 파업 기사의 사진
최저임금 인상이 크게 앞당긴 사람 일터의 로봇 일꾼 시대
미국 서비스업계선 이미 로봇과 인간의 경쟁 시작됐다
한국이 겪고 있는 고용대란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텐데 정부는 과연 고민하고 있는지


페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브다라 호텔에서 룸서비스 업무를 하고 있다. 객실 손님에게 커피와 음식을 배달하고 샴푸 같은 비품을 갖다준다. 팁시는 조금 떨어진 플래닛 할리우드 카지노에서 바텐더로 일한 지 2년쯤 됐다. 1분에 한 잔씩 1시간에 칵테일 60잔을 거뜬히 만들 만큼 숙련됐다. 아이비는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접객 안내원인데 4000개 객실을 커버하고 있다. 체크인 고객에게 일일이 환영인사를 전하고 식당 예약부터 관광 안내까지 다양한 요구를 그때그때 해결해준다.

이 셋은 모두 로봇이다. 페치는 ‘스타워즈’의 꼬마로봇 R2D2처럼 키가 1m쯤 되고 머리 부분에 컨테이너가 있다. 1층 카페의 바리스타가 손님이 원하는 커피를 컨테이너에 넣어주면 알아서 객실로 찾아가 벨을 누른다. 자율주행과 엘리베이터 원격조작 기능을 가졌다. 거대한 팔처럼 생긴 팁시는 관절이 여럿 있어서 음료를 흔들어 섞는 동작에 최적화됐다. 완성된 칵테일에 라임을 한 조각 썰어 올릴 줄도 안다. 아이비가 4000개 객실 투숙객을 혼자 응대하는 건 인공지능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손님의 스마트폰을 통해 문자로 대화하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카지노의 도시를 물밑에서 움직이는 건 웨이터 바텐더 벨보이 청소부 조리사 접객원들이다. 이들이 파업에 나서면 도시는 멈춰 서는데 1984년이 그랬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67일간 업무를 거부했고 이는 라스베이거스의 서비스 노동자들이 벌인 마지막 파업이었다. 이후 5년마다 갱신하는 근로조건 협상에서 매번 원만히 합의점을 찾아오던 흐름은 지난해 5월 깨졌다. 5만명이 속한 두 노동조합이 동시에 파업 찬반투표를 벌였고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임금인상 외에 이들이 내세운 핵심 주장은 “로봇에 일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페치 팁시 아이비 같은 로봇의 등장과 자동화·무인화 물결이 34년 만에 파업 카드를 꺼내게 했다.

시한을 넘겨 극적으로 타결된 합의문에는 이런 조항이 담겼다. ①신기술을 도입하려면 180일 전에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 ②그 영향을 받는 노동자에게 재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③그 때문에 퇴직하는 사람에게 향후 재고용 기회를 줘야 한다. 몇 달 뒤인 지난해 10월에는 세계 최대 호텔 체인 메리어트의 서비스 직원들이 미국 7개 도시에서 실제 파업에 돌입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파업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사람들처럼 로봇을 견제할 장치를 요구했고 두 달 만에 작성된 합의문에 165일 전 사전예고와 재교육 조항이 포함됐다. 일자리를 둘러싼 사람과 로봇의 경쟁, 더 정확히 말하면 로봇에 맞선 인간의 투쟁은 이렇게 이미 시작됐다.

메리어트 직원들이 한창 파업 중이던 11월 미국 프랜차이즈 요식업주들의 콘퍼런스(RFDC)가 열렸다. 화제는 단연 로봇이었다. 한 업주는 레몬 짜는 로봇의 도입을 검토해보니 전 지점에서 사람의 노동을 연간 100만 시간(그 임금도 함께) 줄일 수 있더라고 했다. 이어진 프레젠테이션에서 서빙로봇 ‘딜리 플레이트’(한국 피자헛이 이미 도입했다), 샐러드 만드는 로봇 ‘샐리’, 햄버거 굽는 로봇 ‘플리피’ 등이 잇따라 연단에 등장했다. 웬디스의 CFO는 이런 말을 했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7달러였던 몇 년 전만 해도 로봇으로 얻을 이득이 크지 않았는데 15달러가 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언급은 지금까지 한 얘기가 먼 나라 미국만의 일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부(富)의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고, 오바마정부가 그랬듯이 문재인정부도 최저임금을 올려 해소하려 했으며, 그러자 미국 기업인이 인건비 부담에 로봇을 쳐다보듯 한국에서도 지난해 음식점마다 알바생 대신 주문 키오스크가 급속히 확산됐다.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도 로봇의 시대는 닥쳐올 거였다. 4차 산업혁명의 수많은 징후가 그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저 모퉁이에서 사람의 일터를 기웃거리던 로봇의 등장이 앞당겨졌을 뿐이며, 불평등을 해소해보려는 인간의 노력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난감할 따름이다. 라스베이거스의 노사협상이 타결됐을 때 한 바텐더는 취재진에게 “일단 5년은 벌었다”고 말했다. 2025년이면 이 도시의 일자리 중 3분의 2는 로봇이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돼 있다. 5년 뒤에도 그는 파업으로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용대란도 단순한 경기침체 현상이 아닐지 모른다. 이런 흐름과 무관할 리 없다. 난데없이 경기가 회복돼 일자리가 는다 해도 잠시일 것이다. 더욱 구조적인 로봇과의 경쟁이 닥쳐올 테고 그것은 재정을 풀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복지국가 노동자는 용감하다”며 사람들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해줄 사회안전망을 강조했고, 유발 하라리는 “아이를 키우고 이웃을 돌보는 것도 ‘일’의 범주에 넣는” 일자리 개념의 확장을 제안하며 기본소득을 그 방법으로 들었다. 뭐가 됐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일일 텐데, 정부의 일자리상황판에 이런 고민도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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