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남중] 세운재정비와 도시재생 2.0 기사의 사진
서울 한복판의 낡고 오래된 공업지역, 을지로·청계천 일대 재개발은 오래된 난제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까지 길게 늘어선 세운상가군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을지로3가역과 을지로4가역까지 펼쳐진 도심지역이 ‘세운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된 것은 2006년이다. 21세기 서울시장들은 1960년대, 70년대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이 근대적이고 비도시적인 공간을 도심 안에 그대로 두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전 시장과 오세훈 전 시장에 이어 박원순 시장도 을지로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박 시장은 세운재정비 사업에 도시재생을 도입했다. 철거가 예정됐던 세운상가 건물군을 보존하고, 8개 정비 블록을 171개로 쪼개 소규모 정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2014년 정비계획을 변경했다. 또 도심 미관 정비와 지역 재활성화라는 기존의 사업 목표에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도심 제조업 재구축과 고밀도 개발을 통한 도심부 주택공급 강화 등을 추가했다.

그렇게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던 세운재정비 사업에 최근 브레이크가 걸렸다. 을지면옥 등 노포들과 수만명이 종사하고 있다는 공구상가가 철거되는 데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박 시장이 사업 추진을 일단 중단하고 연말까지 이들을 보존하는 쪽으로 정비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노포와 공구상가 문제는 세운재정비 사업의 새로운 이슈다. 2014년 정비계획 변경 시에도 이 문제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당시엔 세운상가군과 오래된 골목길들을 보존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노포와 공구상가를 보존하기로 한다면 정비사업 틀이 다시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박 시장은 냉면집 하나 살리려고 행정의 신뢰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을지로 재개발을 반대해온 쪽에서 이번 결정을 흡족해하는 것도 아니다. 박 시장의 재검토 결정을 일단 환영하면서도 관심이 집중된 냉면집만 살리고 공구상가 철거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모른 척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박 시장은 “을지면옥이 철거되는 것을 몰랐다”고, “충분히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추진 과정에서 잘못된 점을 인지하면 일단 멈추고 돌아보는 게 옳다”며 “제가 시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도시재생의 방향으로 도시개발을 해나가야 한다”는 의지를 재차 밝혔다. 박 시장으로서는 뼈아픈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인 박원순의 가장 뚜렷한 정체성이자 자산이 바로 도시재생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도시재생을 거론하지 않는 도시개발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그러나 도시재생은 좁고 어려운 길이다. 보존과 개발, 역사와 미래, 산업과 문화, 주민과 토지주 사이에서 어느 쪽 하나 버리지 않고 함께 가는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때로는 보존으로, 때로는 개발로 치우치기도 한다.

도시와 공간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의식도 변한다. 디지털과 럭셔리에 열광하던 대중들이 어느 순간 아날로그와 빈티지의 매력을 알아챘다. 역대 서울시장들이 도심의 흉물처럼 생각했던 을지로는 최근 2, 3년 사이 힙스터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공간이 됐다. 젊은 예술가들과 메이커들은 리모델링을 마친 세운상가로 모여들어 인근 공구상가 장인들과 손잡고 메이커 산업 부흥을 모색하고 있다. 보존과 정비를 구분하는 선이 변할 수밖에 없다.

세운재정비 재검토 결정은 ‘박원순식 도시재생’에 대한 점검으로 이어져야 한다. 도시재생은 넓게 퍼지고 있지만 느슨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말은 도시재생이지만 실제론 재개발과 뭐가 다르냐는 의문도 커지고 있다. 더 나은 도시개발 패러다임으로서 도시재생이 쌓아온 사회적 신뢰가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보다 섬세한, 보다 민주적인 ‘도시재생 2.0’이 필요하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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