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베이비박스의 소원 기사의 사진
제 이름은 베이비박스입니다. 저는 2009년 12월 서울 관악구 난곡로 주사랑공동체교회(담임목사 이종락)에 둥지를 틀었어요. 우리말로는 아기상자라는 뜻입니다. 한글 이름도 좋은데 영어 이름을 갖게 됐지요. 이종락 목사님이 외국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모델을 보고 이름도 차용한 겁니다. 2014년 경기도 군포시 새가나안교회에도 베이비박스가 들어섰어요.

교회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곳에 설치된 저는 아기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어요. 외부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알람이 울려 교회 안의 자원봉사자가 곧바로 아기를 구조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죠.

제 몸에는 두 개의 글귀가 적혀 있어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편 27편 10절)와 “Jesus love you”. 예수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 귀하지 않거나 사랑 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맡겨진 아기는 1520명을 훌쩍 넘어섰어요. 새가나안교회 사례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늘어납니다. 저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요. 화장실에서 출산하고 아기를 변기에 버렸다가 우는 아기를 안고 온 미혼모, 산에서 구덩이를 파고 아기를 낳은 후 묻으려다가 데리고 온 여고생.

일각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 목사님은 이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버린 아기가 아니라,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 생명을 지키려고 맡긴 아기라고 반박합니다. 생명 유기 방조가 아니라 생명 살리기 운동이라는 겁니다. 이 목사님이 미혼모를 설득한 결과 30%가량이 아기를 찾아가 키우고 있습니다. 저에게 처음 맡겨진 아기는 올해로 열 살이 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은 이 목사님께 안부를 전하기도 합니다.

이 목사님은 올해 ‘LG 의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그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베이비박스가 없는 나라가 좋다”면서도 “더 많은 아기를 보호하고 미혼부모를 지원하는 데 힘쓰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지상에서 가장 작은 방입니다. 저는 생명이 없지만 꺼져가는 어린 생명을 살리고 보호합니다. 저의 소망은 단 한 가지입니다. 제가 할 일이 없어져 사라지는 것입니다.

염성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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