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송길원 (8) 결혼 후 부부 갈등으로 집안은 늘 전쟁터

즉흥적 아내와 계획적 나 사이 빈틈 아내는 더 못살겠다고 이혼 요구… 하나님 책망 듣고 아내 잘 섬기기로

[역경의 열매] 송길원 (8) 결혼 후 부부 갈등으로 집안은 늘 전쟁터 기사의 사진
1994년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앙코르 결혼사진’을 찍었다. 이것은 새로운 결혼문화로 이어졌다.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전 9:9)

1988년의 어느 날. 이 말씀을 읽고 내가 한숨을 ‘푹푹’ 내뱉을 줄이야. 84년 결혼한 나와 아내는 매사에 좌충우돌이었다. 아내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몰랐다. 그녀의 언어는 늘 나를 헷갈리게 했다. 남녀 언어가 달랐다. 이성적인 나는 그것을 못 받아들였다. 지적해야 속이 시원했다.




아내는 나의 말을 한두 번 듣다가 피곤해 했다. 즉흥적인 아내와 계획적인 나 사이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부 갈등이 날로 심각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만한 가정생활의 방법을 속 시원하게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인수(고려대) 김수지(이화여대) 전 교수 부부는 우리의 멘토가 돼 주셨다. 두 분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으로 ‘우리만 이런 게 아니었네’라며 탄성을 질렀다.

아내와 나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사사건건 틀어졌다. 치약을 쓰는 것까지 달랐다. 아내는 아무 데나 주물러 놓는다. 치약이 한 번도 제대로 놓인 일이 없었다. 뚜껑은 열려 있고 치약은 침을 질질 흘리듯이 나뒹군다. 나는 꾹꾹 참다가 결국 한마디를 내뱉었다.

“당신 맨날 왜 이래?”

아내는 억울해하며 한 마디 내뱉었다. “당신은 항상 사람을 그런 식으로 봐.”

나는 또 화가 났다. “뭐? 항상? 어쩌다가 화를 낸 고상한 나를 항상이라고?” 또 버럭 성질을 냈다. 그러면 아내는 “사람이 치약 하나 가지고 쪼잔하게…”라고 말한다.

‘어쩌다 부모’란 말이 있다. 맞다. 어쩌다 어른이 됐고 어쩌다 결혼했다. 어쩌다 남편이 됐고 어쩌다 아빠가 됐다. 집안은 늘 전쟁터였다. 어느 날 아내가 집을 나가 버렸다. 나는 “아내가 반성은커녕 뭐 가출까지”라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아내는 기도원을 찾았다. 하지만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했다고 우리 부부 사이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속수무책이었다. 여전히 화장품의 뚜껑은 열려있고 옷은 나뒹굴고. 아내는 정리하는 걸 자주 잊어버렸다.

나는 아내의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89년 결국 올 게 왔다. 아내가 더는 못 살겠다고 이혼하자고 했다. 나는 더 잔인해졌다. 그런 고통 속에서 누구를 찾아갈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찾아갈 곳도 없었다. 그때 내 뒤통수를 치는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이 호통을 치시는 것 같았다. “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불평과 불만이 내 은사라는 걸 알게 됐다. 내 생애 최고의 발견이었다. 하나님이 날 책망하신 그날 이후로 달라졌다. 아내를 공격하기보다 사랑하고 섬기기로 했다. 내가 미련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유능한 조련사는 자기 뜻대로 조련되지 않을 때 자신의 조련 방법을 바꾼다고 했다.

맞다. 그것이었다. 나는 하수였다.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반짝하고 살아지는 유성도 아닌 별똥일 뿐이었다.

그런 자각으로 완전한 해답을 얻었을까. 단연코 아니다. 또다시 찾아온 아내의 갱년기. 아내는 ‘거라사의 광인’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가정사역이 평생의 과업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게 성화(聖化)라는 것을.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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