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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홍역 치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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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 환자가 수십명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예방 접종 여부와 시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후진국병으로 알려진 이 감염병의 부활을 놓고 ‘거꾸로 가는 사회’에 정치적 의미를 덧붙이려는 유혹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역과 같은 감염질환을 초래하는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와 인연을 맺은 시기는 선진국이나 후진국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되는 시공을 훨씬 넘어서기에, 후진국병 담론은 ‘홍역 치르는 사회’에 그다지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 사회는 18세기 비슷한 시기에 홍역, 천연두와 같은 역병들에 대한 실용적 연구의 움직임이 진행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역병에 대처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에 의료 전문가가 아닌 당대의 유력한 사회정치 사상가가 참여했다는 점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정종 22년인 1798년에 홍역의 증상, 원인, 합병증, 치료법과 함께 부록으로 홍역과 유사한 천연두에 대해 소개한 책이 국사 시험 때면 암기 대상이던 ‘마과회통’이다. 당시 나라가 세워지기 전인 북아메리카에서는 1759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북미대륙에 치명적이던 천연두의 예방 접종에 대한 소책자(pamphlet)를 발간했다. 역사적 상상력을 아무리 자유로이 방목하더라도 홍역 치르는 개인과 사회의 고통의 크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18세기나 21세기나 말이다. 그러나 그 고통에 맞서는 두 사회의 모습 차이는 흥미롭다.

유교 전통이 강한 왕조 사회에서 왕이 백성을 ‘어엿비’ 여기듯, 신하의 한 사람인 다산이 백성의 건강을 위해 여러 유사한 책들을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마과회통’을 발간한 것은 연구와 조사를 통한 유교의 인(仁) 사상 실현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베풀어지는 지식인 것이다.

‘홍역 치르는’ 북미 대륙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환자의 고름이나 고름 딱지를 분말 형태로 건강한 인체를 칼로 베어 주입시키는 당시 예방 시술 방식은 많은 반대를 낳았고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 와중에 네 살배기 아들을 천연두로 잃은 벤자민 프랭클린은 “아직 아이의 시술을 하지 않은 부모들은 아이를 잃게 되면 결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며 예방 시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소책자를 냈다. 또 예방 시술을 받은 보스턴 주민 72명 중 “오직 2명만 사망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역학자의 역할도 한 셈이다. 형 제임스 프랭클린과의 신문을 통한 대립도 마다하지 않았다. 형이 보스턴에서 발행하던 ‘뉴잉글랜드 큐런트’를 통해 천연두 예방 시술을 반대할 때, 그는 필라델피아로 건너가 자신의 신문 ‘펜실베이니아 가제트’를 발행하며 가장 두드러진 예방시술 옹호자가 됐다. 이런 사회적 논쟁 과정에서 독립군을 이끌던 조지 워싱턴 장군의 부대원 예방 시술 명령이 나왔고 2, 3대 대통령이 될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등 지도자들의 예방 시술이 이어졌다.

비록 동서양의 예방 접종 정착 과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는 예방으로 건강 위협에 개입할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필요성의 확인 경로의 차이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신종 출몰형 바이러스들이 속속 등장하는 상황에서 예방 효과에 내재된 불확실성이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지더라도 이를 현명하게 잘 조정해 가야한다는 것도 18세기 예방접종의 역사는 예고하고 있다.

주영기 한림대 교수 (미디어스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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