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민지] 낡은 언어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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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성 대학생이 여성 동기생들에게 “예쁘다”며 외모를 평가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특정 성(性)을 대상화하거나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발언'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가 쓴 사과문에서 눈에 띈 단어는 ‘자연스럽게’였다. 자연스럽게 칭찬하려는 의도로 “예쁘다”고 말했다고 했다. 여성에게 건네는 ‘예쁘다’는 말에 칭찬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유지해 온 사회적 약속이었다. 징계 수위가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 건 그 때문이었다. 그 말에 차별적 요소가 내재돼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말을 줄곧 사용해 왔던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언어는 관습의 총화라고 한다. 인간은 언어 자체를 타고나지는 않았다. 언어는 철저히 학습을 통해 축적된다. ‘언어의 줄다리기’를 집필한 신지영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따라 하기’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언어공동체가 공유하는 사회적 약속을 무조건 따라하면서 이들의 질서도 함께 받아들인다. 그렇다 보니 사회가 변해도 말은 예전처럼 남아 있을 때가 많다. 습관으로 단단히 내재된 언어는 사회 변화의 속도를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

사회가 발전하면 공동체의 언어를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불편해질 때가 온다. 언어란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약속된 단어들로 변환돼 나오는 통로다. 그러니 사고가 변하는 순간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껏 사용하던 언어가 천루해 더 이상 그 표현에 동의할 수 없게 되면 관성적으로 유지해 오던 낡은 주류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게 된다. 신 교수는 “언어는 사회적 맥락을 담은 주체여서 새로운 틀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싶을 때 새로운 언어 표현부터 고민하게 된다. 이것이 언어가 가진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불편함을 ‘언어 감수성’이란 말로 정의했다. 고루한 언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부도 함께 했다. 습관적으로 사용한 언어가 지닌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낡았다고 여겨지는 언어의 상당수는 성차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우리 사회에 ‘남고’는 없지만 ‘여고’는 있다. 학교는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이 언어습관에 담겨 있다. 아울러 교사 중에는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지만 언어에는 여교사만 있고 남교사는 없다.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남자’라는 이데올로기가 여교사라는 단어에 함축돼 있다. 여성인 교사는 일반적이지 않아 성별을 명시해야 했던 과거의 언어학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여검사, 여기자도 궤를 같이한다. 최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성차별 언어 개선안 중 가장 많았던 제안은 접두사 ‘여’를 삭제하자는 것이었다.

단어 자체에 남성 우위 사고방식이 서려 있는 경우도 많다. 가족이 사망하면 남은 이들은 ‘유가족’이 된다. 하지만 남편을 잃은 여성을 굳이 과부나 미망인으로 불러왔다. 과부라는 단어를 풀이해보면 ‘부족한 여자’가 되고, 미망인은 남편이 죽었지만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죄인이라는 더 폭력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극단적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엿볼 수 있다.

사람을 기혼과 미혼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언어도 마뜩잖다. 이 세계관에는 ‘이미 결혼한 사람’과 ‘아직 결혼하지 못한 사람’만 존재한다. 기혼자에게는 반드시 결혼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요를 하고 미혼자에게는 어느 시점에선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의견을 수렴해 발표한 ‘성평등 언어사전’을 살펴보면, ‘처음’이라는 뜻으로 쓰는 ‘처녀’란 표현을 시대착오적이라 보는 이들이 많았다. 처녀작은 있지만 총각작은 없다. 그냥 첫 작품으로 써도 무방하다. 유모차는 글자에 ‘母(어미 모)’가 포함돼 있다.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 이 경우 ‘유아차’로 바꿔 쓸 수 있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다. 사회가 변하면서 빚어낸 새로운 이념은 언어에 담겨야 마땅하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과정을 두고 혹자는 괜한 딴죽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이 발전적으로 변해 온 이유는 누군가의 불편함 덕이었다. 민주주의가 그랬고 페미니즘이 그렇다. 이들의 불편함은 지금 이 글이 불편한 이유와는 조금 다르다.

박민지 온라인뉴스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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