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승훈] 면제는 곧 갈등이다 기사의 사진
군복무 시절 주특기는 110 야전공병이었다. 요즘은 4자리 번호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부대마다 달랐겠지만 2군사령부 예하 사단 직할 공병대대 야전공병은 작업 전문가였다. 삽질, 낫질, 톱질에다 가끔은 칼질, 도끼질도 해야 했고 한 달에 두세 번은 시멘트 사역을 나갔다. 화물열차 몇 칸에 가득 실어온 시멘트 포대를 트럭에 옮기고, 부대로 복귀해선 다시 트럭에 실린 시멘트를 창고에 옮겨놓았다. 공사장이었다면 요즘 기준으로 일당 10만원은 거뜬히 받았을 만한 일들을 거의 매일 했다. 그래도 훈련 나가는 것보단 나았다.

삽질 주특기 야전공병에 훈련은 왜 그리 많은지. 남들 다 하는 유격은 물론 동계 혹한기훈련 때 공병은 하루 먼저 가서 다른 부대의 숙영지까지 정비하고 다른 부대 다 떠난 뒤에도 남아 숙영지를 원상복구한 뒤에야 복귀했다. 공병의 자부심 FTC는 또 어떤가. 지뢰, 폭파 훈련도 고됐지만 TV 프로그램에 방영돼 널리 알려진 장간조립교는 훈련의 끝판왕이었다. 200~300㎏에 달하는 장간과 횡골을 몇 명이 들고 옮기고 조립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퍽 힘들다. 한 명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훈련장은 구타와 욕설이 어느 정도 용인될 정도로 살벌했다.

훈련을 나가는 날 완전군장을 한 채 막사 앞에 정렬해 있을 때 가끔 특혜가 주어진다는 사실은 군생활 절반가량을 한 뒤 사무실 계원으로 차출된 뒤에 알았다. 시동을 걸어놓은 군용트럭에 올라타기 직전 부대 선임하사는 훈련 열외자를 발표했다. 관재과(부동산 등 군 소유 재산 관리 담당 부서) 계원이 된 후 유격훈련에서 면제됐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에는 부럽다는 듯이, 나중에는 적의 서린 눈길로 바라보던 동료들의 표정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면제’라는 단어는 갈등 유발 요소다. 불과 며칠에 불과한 훈련만 면제돼도 열외자를 향한 시선은 곧 부러움에서 적의로 바뀐다. 그럴진대 병역 면제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했던가. 수천억원, 수조원의 돈이 달린 사업이라면 또 어떨 것인가.

정부가 29일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대상 사업 23개를 발표했다. 국가재정법 제38조 2항은 10가지 항목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예타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0가지 항목을 들여다보면 그 어떤 사업이라도 모두 해당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그러다보니 포함되지 못한 지역은 정부 결정을 적의 서린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건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의 근거는 ‘지역 균형발전’이었지만 이번 결정은 이 정부의 대의 중 하나인 지방분권과도 맞지 않는다. 많은 지역에 떡고물 하나씩을 안겼다고 해서 균형발전이라는 의미가 충족되는 건 아니다.

지난해 정부는 국가 균형발전 프로젝트 착수를 발표한 뒤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했다. 말이 좋아 의견수렴이지 지자체는 정부 관계부처 태스크포스에 매달렸다. 지역구 국회의원 등을 동원하고 지역정서를 들먹이며 협박하는 모양새가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엔 정부를 향한 로비였다. 국가 균형발전 프로젝트로 인해 지역은 중앙의 눈치를 더 살폈고, 의존은 더 심화됐다.

홍남기 부총리는 “(예타 면제 사업에) 향후 10년간 국비 기준 연평균 1조9000억원이 소요되며, 올해 정부 재정 총지출 규모 470조원과 비교할 때 중장기적 재정 운용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재정 운용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차라리 지방에 그만큼의 재정을 넘겨주고 지자체가 사업 추진을 결정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광역지자체별로 매년 평균 1000억원 넘는 돈이 돌아갈 터인데 그렇다면 지역 간 갈등의 여지는 퍽 줄어들 것이다. 지방에서도 사업 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나오겠지만 최소한 정부가 지방분권을 위해 재정을 그만큼 더 나눴다는 명분은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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