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우] 북 비핵화는 ‘호수 속의 달’인가 기사의 사진
정부, 북한과의 ‘민족 공조’에 매달리거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승부를 걸면 안 된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 마무리해 동맹 추스르고 한·일 관계 바로잡아
북한의 당면 위협과 중국의 미래 위협에 대비해야


2월 말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많은 전문가들은 “알맹이가 없는 회담이었지만 그래도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할 것 같다. 북·미 협상에서 ‘나쁜’ 결과나 ‘대단히 나쁜’ 결과가 도출되지 않아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나쁜’ 결과란 북한이 상당한 핵 능력을 보유한 채 눈가림식 비핵화 조치들을 취하고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 및 한·미동맹 약화 조치들로 화답하는 ‘스몰딜(small deal)’을 의미한다. ‘매우 나쁜’ 결과란 한·미동맹이 아예 ‘와해’ 수준으로 악화되고 한국의 정책 혼선과 대외 고립이 심화되면서 국가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사태를 말한다. 이론상으로는 북한 비핵화와 평화 정착이 이루어지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하는 ‘최상’ 시나리오도 존재하지만, 북한의 핵 포기를 기대하기 힘든 만큼 가능성도 희박하다.

북한이 좀처럼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이 핵우산을 포함한 미국의 영향력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로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화’ 방안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 표현을 2018년 4·27 판문점선언,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 9·19 평양선언 등에서도 고수했고, 2018년 신년사가 ‘핵 불필요’를 거론할 때에도 “모든 대북 위협이 제거된다면”이라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전제를 달았다. 북한이 실질적 핵 포기와 거리가 먼 주변적 조치들만 취하고는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라”며 버텨온 것도 이런 입장에 따른 것이다.

둘째, 중국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밀착 지지하고 있다. 북·중 정상회담이 끝나면 중국은 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지지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미국을 역외로 축출하고 싶다는 의지를 외교적 표현을 빌려 밝히는 것이다. 한·미동맹과 미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이 북한과 중국의 최우선 전략목표이기에 중국이 ‘조선반도 비핵화’ 방안에 동조하는 것은 당연하며, 중국이 부분적으로나마 대북 제재에 동참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에 의한 것이었다.

셋째, 한·미 간 동맹 신뢰가 바닥인 상태에서 진행되는 북·미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의 안보이익을 자상하게 배려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무리다. 동맹 공조보다 민족 공조를 앞세우는 문재인정부의 탈미(脫美)·통북(通北) 정책 기조와 동맹국의 운명보다 미국의 당면한 금전적 이익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트럼프주의(Trumpism)가 맞물리면서 한·미동맹은 이미 전부터 중병(重病)을 앓고 있었다. 요컨대 북한의 핵 집착, 북·중 밀착, 동맹 이완, 한국의 외교 고립 등을 종합할 때 몇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나 핵 협상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CVID)’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핵 폐기(FFVD)’가 가능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 비핵화’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호수 속 달’처럼 기약 없이 한국인들의 애간장을 태울지도 모른다.

북한이 ‘가짜 비핵화’에 대륙간탄도탄 포기 등 미국이 원하는 ‘선물’을 얹어주고 미국이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 제재 완화, 종전선언, 주한미군 감축 등으로 화답하는 ‘스몰딜’이 성사된다면 ‘역사적 진전’이라는 트럼프의 자찬(自讚)에 한국 정부와 방송들이 ‘항구적 평화를 향한 위대한 첫발’이라며 거들고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3국 정부들의 자축(自祝) 행사일 뿐 한국 국민의 안보, 북한 민생경제 개선, 한·미동맹의 미래 등은 희생물로 전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전선언은 법적으로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 주둔과 무관하지만 한국 내 좌파세력들을 크게 고무해 동맹 이완과 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커질 것이며, 그렇게 되면 북한과 중국은 최대 대남 전략 목표인 ‘한·미동맹 무력화’를 향해 한발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더 ‘나쁜’ 시나리오도 있다. 즉, 한국 정부의 ‘민족 공조 최우선’ 고수, 외교 고립 심화, 더욱 강력해진 트럼피즘 등이 합쳐진다면 미국이 동맹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존망의 기로에 서는 수순으로 갈 수도 있다.

요컨대 한국은 진의가 확인되지 않는 북한과의 ‘민족 공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동맹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중국과의 관계에 승부를 걸어서도 안 된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안보와 남북 협력 간, 동맹 공조와 민족 공조 간, 그리고 동맹과 한·중 관계 간의 조화를 회복하고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신속히 마무리해 동맹 추스르기에 나서야 하고, 초계기 갈등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는 한·일 관계도 바로잡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말해 북한이라는 당면 위협과 중국이라는 미래 위협에 대비해야 하는 마당에 한·일 관계마저 적대적인 것이 된다면 어떻게 안보국방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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