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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정진영] 목회자와 명함

첫 만남 때 명함 건네는 목사들 거의 없어… 교회 밖과의 대화 절실한 상황 감안하면 아쉬워

[샛강에서-정진영] 목회자와 명함 기사의 사진
국민일보 종교국은 전 세계 어느 종합 일간신문에도 없는 독특한 국(局) 단위의 기구다. 31년 전 한 이단세력이 신문을 만든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교회를 지키자는 절박한 심정이 모아져 국민일보가 창간됐고, 종교국은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위적 수단으로 생겨났다. 종교국은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대변하고 옹위하는 입장의 기사를 내보낸다. 목회자, 교회, 교단, 연합기관, 교계 관련 단체는 물론 평신도의 동선을 포착해 매일 8개 면의 ‘미션라이프’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보도한다.

종교국장 10개월째다. 지금까지 교회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주로 목회자들이고, 대부분 처음 접하는 인사들이다. 초면의 목사들을 대면하면서 당혹스러웠던 때가 많았다. 자신을 소개하면 으레 명함을 주고받는 것에 익숙한 나는 이를 건네지 않는 이들의 인사법이 낯설었다. “저, 국민일보 종교국장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 “아 예. 저 ○○○목삽니다. 저는 명함이 없네요.” 대략 이런 모습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받은 명함은 250장이 좀 넘는다. 담임목사 타이틀의 명함은 26장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출판, 건축, NGO, 신학대학, 선교단체 등 기독 관련 업무 종사자들이었다. 숫자상 목사들을 훨씬 많이 만났음에도 접수된 명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스스로를 대놓고 드러내기 불편해하는 성직자들의 속성을 감안하면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이 체득화된 이들 입장에서 보면 명함을 나누면서까지 관계의 폭을 넓혀야 할 까닭이 없다는 일종의 신앙고백일 수 있다. 그러나 소통에 대한 인식 부족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교회라는 닫힌 공간에서 신도들에게 존중받는 데 익숙해진 탓에 ‘명함을 안 주면 날 몰라’ ‘아니 나를 모른다 말이야’라는 잠재의식은 없는지 묻고 싶다. 교계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 난감함은 극에 달한다. 한꺼번에 여러 명의 목회자를 만나는 때다. 양복 윗도리 주머니에 늘 넣어둔 10여장의 명함이 나갔으나 돌아오는 것은 1∼2장뿐, 이쯤 되다 보면 상대의 얼굴과 이름이 전혀 조응되지 않는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알아서 나를 파악하라’거나 ‘당신과 굳이 연락을 해야 하나’ 둘 중 하나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자연스레 명함 본전 생각이 든다. 유쾌하지 않은 불통의 사례를 경험했다. 한 담임목사의 명함에 찍힌 휴대전화번호를 입력한 다음 카카오톡 메신저에 ‘만나서 반가웠다’는 안부 인사를 남겼다. 이틀 후 답을 보내온 사람은 부목사였다. 본인이 받은 메시지 응답을 아랫사람에게 맡기는 극단의 소통 행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동안 ‘내가 뭔 결례를 했나’ 하고 반성 아닌 반성을 했다.

한국교회가 맞닥뜨린 엄중한 현실 앞에 종교국장이 고작 목사들의 명함 얘기를 하는 게 한가로워보일 수 있다. 갈수록 거세지는 이단 사이비의 발호,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냉랭한 눈빛,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서의 점증되는 교회 역할,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의 무거운 책무, 연합과 일치가 시급한 교계의 실정을 감안하면 큰 담론을 주장해야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러나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의 해법도 디테일의 실천에서 비롯된다. 명함은 단순한 자기소개서가 아니다. 상대와 대화를 진지하게 해보겠다는 최소한의 제스처다. 한국 사회에서 공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 밖과의 교유(交遊)가 필수적이고 그 작은 방편의 하나가 스스럼없이 명함을 나눔으로써 신호를 보내는 길이라 여긴다. 2017년 11월 취임 후 한국 등 첫 아시아 순방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명함 예절 교육을 받았다는 소식이 당시 여러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명함이 비즈니스 차원의 수준을 넘어 국가 간 정상회담에 따른 외교 의전의 관심사로 다뤄질 정도로 의미 있는 행위라는 방증이다.

국민일보 종교국장은 교계에서 더러 먹히는 존재다. 기사 게재를 부탁하는 측이 적지 않고 그럴 때면 생색을 내기도 한다. 이런 내게도 명함을 잘 주지 않는 마당에 교회 담장을 넘어 누구와 어떻게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것인지 안타깝다. 올 한 해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사회와의 교제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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