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판결에 대한 여권의 과민 반응은 진보세력의 고질인 ‘우리만 옳다’는 독선
비판세력을 적으로 배척하고 내부 이견도 인정하지 않는 행태는 정치에 대한 총체적 불신 초래할 것


도덕이 된 정치는 정치의 본질을 파괴한다. 우리의 정치문화를 뒤흔들어 놓은 판결 하나가 정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럴 땐 정치를 한다는 게 죽도록 싫다.” 친문 핵심 인사인 김경수 경남지사 구속에 대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이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 김경수를 좋아하고 믿는다. 정치인 김경수를 한없이 신뢰하고 응원한다”고 덧붙인 이 애절한 메시지는 한편으로 인간적인 동지애를 느끼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정치를 하였기 때문에 그런 판결을 받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런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인가? 그가 동지로서 응원하는 김경수가 어떤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란 말인가? 메시지에서 절절히 묻어나는 통한의 감정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진실보다는 수많은 의문이 나타날 뿐이다.

우리는 지금 민주적 정치문화의 쇠퇴와 타락을 목격하고 있다. 정치가 정말 죽도록 싫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번도 신뢰를 받은 적이 없기는 하지만 촛불 혁명으로 바뀌리라 기대하였던 정치가 우리를 배신하고 있다. 법원이 김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결로 한국 정치문화의 천박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김 지사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것이 왜 이렇게 졸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일까? 핵심은 댓글 조작 행위가 디지털 시대에 투명한 정보 교환과 건전한 온라인 여론 형성을 심각하게 훼손해 민주주의의 토대 자체를 파괴한다는 판결이다. 문제는 김 지사가 이러한 댓글 조작 범행에 개입했다는 것이 인정되었다는 점이다.

판결에 문제가 있으면 그 근거에 대한 이의와 비판을 제기하면 된다. 그런데 집권 여당은 판결에 불복하고, ‘판사 탄핵’까지 거론하며, 김 지사에 대한 유죄 선고를 ‘사법농단 세력의 보복’으로 규정하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판결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법부를 매도하고, 민주주의 제도의 토대인 삼권분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김경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나라 전체가 두 진영으로 갈라져 서로 ‘대선불복’과 ‘헌법불복’을 외치면서 싸우고 있다. 대화와 소통은커녕 상식적인 토론마저 불가능해진 것이다.

문제는 판결이 아니라 판결에 대한 대응이다. 많은 사람들은 집권 여당의 과민 대응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고 우려하지만 사실 이런 과도한 대응의 원인은 따로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진보세력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독선의 ‘도덕정치’다. 우리만 옳다고 믿는 ‘독선’은 극복하고 제거해야 할 ‘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도덕정치는 결국 건강한 정치문화를 파괴하고, 정치 자체를 지긋지긋한 혐오의 대상으로 만든다.

왜 도덕정치가 정치를 배신하는가? 우선, 도덕정치는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 정치적 상대는 단지 청산되어야 할 악일 뿐이다. 김경수 지사에 대한 법원의 구속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를 양승태 적폐사단의 조직적 저항으로 몰아붙이는 태도가 이를 잘 말해준다. 법과 양심에 따라야 할 판결이 보복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주장에는 거꾸로 자신들만이 정당한 양심을 갖고 있다는 오만과 독선이 가득하다. 사법부 적폐세력의 보복이라는 집권 여당의 주장에는 근거가 빈약하고, 기껏해야 ‘양승태 키즈’라는 치졸한 인신공격만 난무할 뿐이다.

또한 도덕정치는 외부의 비판세력을 청산되어야 할 적으로 배척할 뿐만 아니라 내부의 의견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대신에 같은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진영논리가 대표적인 현상이다.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한 책임보다 신념과 신조를 더 중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결국 건강한 정치를 병들게 한다.

정치에도 물론 도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에 필요한 최소 도덕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할 줄 아는 확장적 사고방식과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책임의식이다. 반면, 도덕정치는 도덕이 정치의 이익을 보장해준다고 믿으면서 도덕을 제멋대로 규정한다.

이처럼 도덕의 선명성을 내세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도덕정치가 성행하면 도덕이 정치의 단순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결국은 신뢰를 잃게 된다. 도덕을 내세우는 정치인도 결코 도덕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 청산되어야 할 적폐세력과 ‘똑같다’는 사실을 국민이 깨닫게 되면, 도덕정치의 역설적 결과는 정치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다. 이런 정치는 정말 싫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