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장군·한용운 선생의 ‘항일투쟁 기운’이… 기사의 사진
충남 홍성군 서부면 모섬 정상에 설치된 속동전망대를 찾은 여행객이 바다 건너 태안군 안면도로 떨어지는 일몰의 찬란한 순간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고 있다. 영화 ‘타이타닉’을 연상시키는 배 모양의 전망대는 ‘사진찍기 좋은 경관명소’로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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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은 항일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역사적인 고장이다. 경북 안동 다음으로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 무장투쟁의 핵심 인물인 청산리 전투(청산리 대첩)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과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홍성에서 태어났다. 역사적 인물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거센 저항으로 일제 강점기 의병전이 치열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홍성을 찾았다.

백야는 1889년 홍성군 갈산면에서 태어나 15세 때 집안의 노비를 해방하고 18세가 되던 해인 1907년 호명학교를 세우는 등 전 재산을 털어 교육에 힘썼다. 그에게 나라 잃은 아픔은 장을 끊어내는 고통이었다. 1915년 광복단에 가담해 격렬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1918년 만주로 건너가 3·1운동의 기폭제가 되는 무오독립선언서 민족지도자 39명 중 한 사람으로 서명했다.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뒀다. 백야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 독립군 연합부대가 합동작전을 벌인 독립군 사상 최대 전과로 꼽힌다. 백야의 생가지는 충남도기념물 제76호로 지정돼 있다. 기념관, 사당, 공원 등을 갖추고 있다. 기념관에는 백야의 출생부터 독립운동·암살·훈장추서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록과 자료가 전시돼 있다.

1879년 홍성군 결성면에서 출생한 만해는 33세에 만주로 망명해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 등 지사들을 만나 독립운동을 협의했다. 1919년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명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공약 3장을 작성했다. 이후 체포돼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수감생활 중에는 ‘변호사를 대지 말 것, 사식을 취하지 말 것, 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 등 3가지 원칙을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만해의 생가도 충남도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됐다. 초가집 형태로, 만해사·만해문학체험관·민족시비공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홍성의 옛 이름은 홍주(洪州)다. 고려시대부터 사용한 홍주 지명은 1914년 일제 강점기 지역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강제로 홍성으로 변경됐다. 일제는 홍주성(홍주읍성)이 의병의 거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문과 북문을 철폐하고 성곽 곳곳을 철거했다고 한다. 동문인 조양문마저 없애려 했으나 지역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홍성 중심부에 우뚝 솟은 조양문은 서울 숭례문을 닮았다. 밤이면 화려한 경관조명으로 황홀한 풍광을 연출한다.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에 반발해 을사의병이 일어나는데 홍주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1906년 3월 이조참판을 지낸 민종식을 비롯 채광묵, 박인기, 이만식 등과 농민, 유생 등이 홍주성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같은 해 5월 홍산(현 부여군 내산면)에서 모인 병오 홍주의병은 서천, 남포, 결성 등을 공략하고 홍주성을 탈환하지만 일본의 대규모 공격에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무너졌다.

홍주성 전투에서 숨진 의병은 수백명에 달한다. 홍주성을 지키다 희생된 의병의 시신을 수습한 건 1949년. 의병들의 유해가 지금 홍주의사총에 묻혀 있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의미에서 ‘구백의총’이라 부르다 1992년 홍주의사총으로 이름을 변경했고, 2001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홍주의사총 인근에는 의병들의 영혼을 모신 창의사, 홍주의병기념탑 등이 있다.

홍주성에는 조선시대 홍주목 관아가 있었다. 그 자리에 홍성군청이 있다. 옛 관아와 현 관청이 공존하는 역사 현장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현 건물을 지으면서 대부분 건물을 훼손해 지금은 810m 이르는 남쪽 성벽과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만 남아 있다. 홍성군청의 정문은 홍주아문(洪州衙門)이다. 홍주목사 집무실인 안회당의 외삼문이다. 군청사 뒤 여하정은 목사(牧使)가 휴식을 취하던 육각형 정자로 거대한 버드나무 고목과 어우러져 풍경을 더한다. 여하정과 청사 사이의 후정에는 홍주목의 동헌이었던 22칸짜리 한옥 안회당이 자리한다.

3·1운동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가던 당시 홍성군 금마면과 장곡면에서도 만세 시위가 이어졌다. 1919년 4월 1일 금마면 가산리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4월 4일과 7·8일 장곡면에서도 독립만세를 불렀다. 만세시위로 수많은 백성이 옥고를 치렀다.

홍성에는 드라이브 명소인 약 7㎞의 해안도로를 따라 서해안을 대표하는 별미가도가 있다. 천수만방조제와 인접한 궁리포구에서 속동전망대를 거쳐 남당항에 이르는 구간이다. 새조개를 비롯해 굴, 주꾸미 등이 철 따라 올라와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이 가운데 속동전망대는 ‘피끓는 청춘’의 촬영현장이다. 모섬으로 불리는 작은 섬과 천수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명소이다. 데크길을 따라 모섬에 정상에 이르면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배 모양의 포토존이 나타난다. 갯내음과 솔향 그윽한 포토존에서 내려다보는 천수만의 낙조는 한 폭의 그림이다. 붉은 빛을 내뿜는 해가 안면도에 걸리면 노을을 품은 검은 갯벌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 여행메모
단백질·철분 등 영양분 풍부
겨울 별미 ‘새조개’ 맛보세요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약 11㎞를 달리면 홍성군 소재지다. 이곳에 홍주성과 조양문이 있다. 백야 김좌진 장군 및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지나 남당항, 속동전망대·궁리포구 등으로 먼저 가려면 서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버스는 센트럴시티터미널이나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탄다. 2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홍성의 ‘겨울 별미’는 새조개(사진)다. 새조개의 참맛을 느껴볼 수 있는 ‘제16회 남당항 새조개축제’가 지난 1일 개막해 오는 17일까지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 일원에서 열린다. 새조개는 속살이 새의 부리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단백질, 철분, 타우린 등 영양분이 풍부해 겨울철 보양식으로 인기다. 올해 공급량이 줄어 1㎏당 가격이 8만∼10만원 정도로 지난해 이맘때 6만5000∼7만원보다 많이 올랐다

궁리포구에서는 올해부터 제1회 굴·수산물축제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15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3개월간 이어진다. 굴은 11월부터 2월까지 제철이다.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굴은 열량과 지방 함량이 적어 다이어트에 좋다. 칼슘이 풍부하고 철분·구리도 함유돼 있다.

홍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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