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문 대통령이 입장 밝힐 때 기사의 사진
더불어민주당 사람을 많이 만나봤지만, 그중에서 제일 괜찮은 사람 한 명을 꼽으라면 김경수 경남지사를 들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해 봉하마을에 내려가면서부터 그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민주당 사람들은 주장이 강하고, 특히 주장하는 방식들이 매우 거칠거나 예의 없는 경우가 많지만, 김 지사는 그런 사람들과 결이 달랐다. 그는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대응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 지사는 기자들에게 늘 조곤조곤 말을 했고, 설사 언론에 오보가 나와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다. 이명박정부가 청와대 자료 유출을 문제 삼아 맹공을 퍼부을 때도 차분한 어조로 봉하마을 입장을 잘 대변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눈곱만큼이라도 안 좋은 기사가 나가면 소리부터 바락바락 지르며 전화를 걸어오는 다수 민주당 인사들과 구별됐다. 노 전 대통령이 왜 그를 마지막 비서관으로 골랐을지 짐작이 갔다. 그는 ‘평정심의 대가’였고 참 선한 정치인이었다. 그런 김 지사가 왜 드루킹 사건에 연루됐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게다가 그는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수행실장이었다. 홍보나 SNS를 담당하는 별도 조직이 있는데 굳이 수행실장이 댓글에 직접 개입할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공정하지 못한 일에 손을 댈 성품이 아니었다.

분명한 건 그가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드루킹을 만났다는 점이다. 김 지사에 따르면, 드루킹은 2016년 중반에 당시 국회의원이던 그에게 접근했다. 자신들이 경제민주화에 관심이 많고, 문 후보가 이에 가장 적합하니 대선을 돕겠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문 후보 측이 외곽조직을 최대한 확보할 때여서 반가운 제안이었을 것이다. 또 김 지사는 이들의 제안을 선의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의 만남이 8840만건의 댓글조작으로 이어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특검 수사 결과 드루킹 일당의 충격적인 댓글조작이 확인됐다. 김 지사가 직접 지시하거나 관여했는지는 2심과 3심 재판까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 정도의 광범위한 조작은 어떤 식으로든 대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 2위 득표율이 41% 대 23%여서 순위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단 0.01%의 영향을 미쳤어도 잘못은 잘못이다.

여권이 재판 결과에 반발해 방방 뛰고만 있을 뿐, 아직 1심 결과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김 지사의 직접 지시가 없었더라도, 이번 사건에는 여권이 정치적으로 책임질 잘못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의 핵심 측근과 나쁜 집단의 만남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점, 그 만남이 대선 이후에도 계속되고 오사카 총영사 자리까지 청와대에 추천된 사실, 만남을 이어온 집단의 댓글조작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된 점, 집권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구속으로 도정이 차질을 빚게 된 점 등이 그런 잘못들이다. 여기에 더해 집권 3년차를 맞아 이번 일이 야기한 정치적 혼란과 국정 운영이 타격받게 된 점까지 감안하면 집권당이 억울하다고 할리우드 액션만 펼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여권의 과잉 반발이 김 지사에 대한 마음의 빚일 수 있다. 이런 일에 둘도 없는 ‘착한 김경수’가 엮여 혼자 죄를 뒤집어쓴 것에 다들 미안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잘못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지금의 정치적 혼란을 정리하려면 문 대통령이 드루킹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한다. 대선 후보의 핵심 측근이 대선과 관련해 구속된 상황을 언제까지 침묵으로만 대응할 수는 없다. 청와대는 2심, 3심까지 지켜보겠다지만, 그 사이 정쟁은 더해지고 국민만 피곤해질 수 있다. 잘못이 없으면 없는 대로 국민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 마침 대통령이 설명을 하면 ‘항소심 가이드라인’이라고 반발할 법한 자유한국당이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먼저 요구한 상황이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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