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라동철]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기사의 사진
12·28 합의에도 위안부 문제는 미해결 상태… 참회와사죄 없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주장은 어불성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 열려면 일본 인식 바뀌어야, 국가란 이름으로 할머니들 또 배신해선 안 돼


설 연휴, 전에 봤던 영화를 TV로 다시 봤다. 2017년 9월 개봉된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1) 할머니와 고(故) 김군자(1926~2017) 할머니의 2007년 2월 15일 미국 하원 의회 청문회 증언을 모티브 삼아 만든 영화다.

할머니들의 증언은 그해 7월 30일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미래세대에 대한 역사교육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영화 종반부, 증언대에서 옥분 할머니는 열세 살 때 끌려가 겪었던 비참했던 위안부 생활을 털어놓으며 외친다.

“아이 앰 소리(I am sorry),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더 늦기 전에 인정하고 사과하십시오. 일본은 강요와 협박으로 우리를 성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단지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용서받을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지만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정부가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일 뿐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발표한 합의 내용에는 ‘아베 총리가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위안부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사죄를 표명한다’고 명시돼 있있었다. 말뿐인 사과였다. 아베 총리는 직접 사과를 거부했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죄 편지를 쓸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합의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군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마음으로부터의 깊은 사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일본 정부는 그러면서 12·28 합의를 내세우며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약 100억원)으로 화해·치유재단을 만들었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원한 건 그게 아니었다. 참회와 사죄는 하지 않고 돈을 내세워 이미 다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건 1992년 1월 이후 매주 수요집회를 열어 온 할머니들에 대한 모욕이다. 외교적 수사를 걷어내고 보면 당시 합의는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할 테니, 사과한 것으로 치자. 대신 돈은 좀 쥐어 주겠다. 지겨우니 이제 그만 떠들어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 이런 수준으로 위안부 문제를 종결짓자고 합의해 줬는지 지금도 납득할 수 없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법적 배상이다. 일본이 사죄해야 할 대상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피해 할머니들이다. 피해자들을 제쳐둔 채 체결된 협정은 그런 점에서 원인 무효다. 정부가 뒤늦게 오류를 인식하고 화해·치유재단 해산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최근 한·일 관계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초계기 갈등으로 인해 악화될 대로 악화돼 있다. 이웃 나라가 이렇게 으르렁대는 건 서로에게 불행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관계 개선이 절실하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이대로 덮을 수는 없다. 위안부 강제동원은 용서받기 어려운 반인륜적 범죄다. 잘못된 합의라도 정부 간 합의인 만큼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불성설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전제인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피해자가 용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난달 28일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로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평균 연령이 91세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할머니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일본은 용서를 구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된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위안부 문제가 잊혀질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산이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회피해 왔는지를 우리는 물론 세계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역사적 과오는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다. 참회하고 용서를 구할 때 비로소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날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옥분 할머니가 미 의회에서 증언하는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증언하겠다고 결심한 옥분 할머니가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 오열하는 장면이다.

“엄마, 죽을 때까지 꽁꽁 숨기고 살라고 했는디, 엄마랑 그렇게 굳게 약속했는디, 인자 그 약속 못 지켜. 아니, 안 지킬라고. 엄마, 왜 그랬어? 왜 그렇게 망신스러워하고, 아들 앞길 막힐까봐 전전긍긍, 쉬쉬하고…. 내 부모 형제마저 날 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떳떳하게 살 수 있겠어. 불쌍한 내 새끼 욕봤다, 욕봤어. 한마디만 해 주고 가지. 그라고 가지. 엄마, 엄마!”

일본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와서도 오랜 세월 죄인인 양 숨죽이며 살아온 데는 우리 책임도 크다. 정부 간 합의라는 이유로 할머니들을 또 배신해서는 안 된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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