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송길원 (12) “가정사역을 교회에 접목해 완성해 내라”

신학대학원 동기들 적극 권유 교회 건축 자금까지 마련해줘, 2017년 4월 마침내 설립예배

[역경의 열매] 송길원 (12) “가정사역을 교회에 접목해 완성해 내라” 기사의 사진
2017년 4월 경기도 양평 가정사역 종합센터 ‘W-스토리’에서 진행된 설립예배에서 송길원 목사의 고신대 신학대학원 동기들이 특송을 부르고 있다.
“나는 배웠다. ‘기도해 보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의논해 보겠습니다’ 이런 말이 긍정이 아닌 부정의 언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입당예배나 건축예배를 드리고 나면 후원금(헌금)이 뚝 끊어진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어떤 사업을 일으키건 간에 초기투자가 고갈되는 ‘죽음의 계곡’이 있음을. 나는 배웠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것을.”

오마르 워싱턴 시인의 흉내를 낸 낙서 일기다. 매일 ‘송길원의 요즘 생각’이란 메일로 사람들에게 글을 보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은 분들이 격하게 반응했다. 그동안 너무 몰랐다며 비행기 대신 온종일 기차를 타고 아낀 돈을 ‘W-스토리’ 공사비 헌금으로 보내온 선교사도 있었다. 배운 것이 어디 한 둘일까.



가정사역자로 깨달은 것 하나가 있었다. 모두 떠나고 벌판에 홀로 남아 있을 때라도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어 주는 한 사람이 아내라는 사실이었다. 건축하면서 우리의 가정도 리모델링되고 있었다. 묻고 물었다.

건축이 무엇일까.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우는 일이었다. 건물은 돈으로 짓는 게 아니라 무릎으로 지어지는 것이었다. 경기도 양평에 ‘W-스토리’ 공사가 진행되면서 깨달은 점이다. 건축이 끝난 시점에서 나에게 특수 임무를 부여한 이가 있었다. 신학대학원 동기인 옥수석 거제교회 목사였다. 학창시절 그는 ROTC 장교 출신이라 옥 중위로 불렸다. 옥 중위가 말했다. “교회 개척할 생각 없나?” 약간은 뜬금없는 소리였다.

나에게 담임 목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동기들 처지에선 졸업한 동기 중 유일하게 개척하지 않은 내가 안쓰럽기도 했을 터였다. 원로회의(같은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던 3인방 형들)가 앞장섰다. 새벽 도하작전이 펼쳐졌다. 동기 중 비교적 큰 교회에 속한 울산시민교회를 새벽 시간에 찾아갔다. 동기인 이종관 목사는 성자 소리를 듣는 신실한 분이었다. 말수는 적지만 행동은 울림이 큰 분이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도와 달라”는 요청에 이 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2억 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있던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2017년 4월, 드디어 설립 예배를 드리게 됐다.

동기들이 나를 울게 했다. “평생 네가 해 온 가정사역을 교회에 접목해 완성해 내라”는 준엄한 명령이었다. 동기들은 내가 해 왔던 일을 너무도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마침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였던 터라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교회’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W-스토리’ 안에 이미 지어진 ‘청란교회’를 더 즐겨 부른다. 결국 청란교회는 닉네임이 됐다.

설립 예배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택영 화백이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설립 예배를 드리는 날 우리는 선교사를 파송했다. 한 권사님이 예배에 참석했다가 파이프 오르간값을 쾌척했다. 기적은 한 둘이 아니었다. 곳곳에 새겨진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었다. “내가 한다.”

60세가 넘어선 지금도 나는 왕초보 목사다. 매사에 서툴다.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한가지만큼은 분명히 하고 산다. “설교한 대로만 살자. 그렇지 못하면 사는 대로만 설교하자.”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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