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지역 리포트] 경로당, 주민들도 이용하는 ‘개방형 공간’ 탈바꿈 기사의 사진
‘칼라믹스’ 수업을 듣는 주민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을 소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서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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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이 진화하고 있다. 노인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 아닌, 주민을 위한 개방형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과의 소통 공간을 만들어 어르신들이 고립되는 것을 막고 지역 내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거점으로 만든다는 취지다.

카페·미용실로 진화하는 경로당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용산구 신흥경로당. 용산동2가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서 흰색 페인트로 새롭게 단장한 건물 외관이 눈에 띄었다. 나무로 된 현판에 ‘신흥경로당’이라고 적혀 있었고 옆에는 ‘신흥작은복지센터’라는 안내도 붙어 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12월 20일 리모델링을 해 새 단장을 마쳤다. 경로당 회원 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경로당 시설과 프로그램을 이용해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한 ‘작은복지센터형 경로당’이다. 2층에 들어서자 ‘칼라믹스 수업’을 받는 여성들이 모여 있었다. 일주일에 3번 이뤄지는 수업에서는 여러 색의 점토를 섞어 다양한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색을 섞고 손으로 점토를 빚는 작업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칼라믹스 수업은 원래 동주민센터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신흥작은복지센터가 리모델링되면서 이곳 경로당 어르신들과 한 건물에서 수업을 받게됐다. 이곳의 막내는 58세다. 박효순(65·여)씨는 “원래 노인정 자리였을때는 ‘노인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 와 볼 일이 없었다”며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며 인사하니 다 이웃이라는 생각에 정감이 간다”고 말했다. 김금자(73·여)씨는 “내 부모 같은 분들과 같은 건물에 있는데 불편할 건 전혀 없다”며 “나도 곧 그쪽으로 갈 나이 아닌가”라며 웃었다.

입구에서 들어서는 계단이 1층은 상당히 완만했다. 기존 계단 한 개를 여러 개로 쪼개 경사를 낮춘 흔적이 보였다. 1층은 경로당 어르신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48명이 회원으로 등록해 이용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은 주로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함께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안부를 확인하는 것도 일상이 됐다. 매일 오던 어르신이 방문하지 않을 때는 서로 안부 전화를 걸고 확인한다.

이날 오후 4시쯤 어르신 5명이 둘러 앉아 이북식 순대와 함께 반주를 곁들였다. 해방촌 지역 특성상 이북에서 온 피란민이 다수여서 고향 음식을 나눠먹으며 옛 이야기에 빠질 때가 많다고 한다. 보일러를 틀어 놓은 방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집에서는 난방비 걱정에 보일러를 틀지 않아 냉기가 흐르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했다.

홍용식(90) 신흥경로당 회장은 “좋은 시설에서 겨울을 보낼 수 있어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로당에 늙은 사람들만 있었는데 같은 건물에 젊은 사람들이 보이니 반갑다”며 “3층(카페)이 완성되면 다양한 주민들과 함께 이야기도 하고 어울리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카페는 이달 중 준비를 마치고 운영에 들어간다.

신흥경로당은 카페와 프로그램실 뿐 아니라 미용실도 갖추고 있다. 지하 1층에는 어르신들이 저렴한 비용에 머리를 손질할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됐다. 안으로 들어서니 실제 미용실처럼 큰 거울과 함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미용 의자 3개가 자리했다.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샴푸 시설도 있다. 모두 대한노인회 용산구지회가 낸 아이디어로 꾸며졌다. 경로당 회원은 50%, 주민은 30% 할인을 받는다. 재능기부 형태로 자원봉사자들이 머리 손질을 해준다. 홍 회장은 “저렴한 미용실을 찾아 종로까지 나가 5000원을 내고 매달 머리를 잘랐는데 이제는 간편하게 이곳에서 할 수 있게 돼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다만 용산구는 인근 지역 미용실과의 상생을 위해 저소득층이나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 목적으로 미용실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양한 주민과 함께하는 경로당

종로구가 운영 중인 평창경로당, 창인경로당, 교남경로당 역시 작은복지센터형 경로당이다. 경로당 회원 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다. 평창경로당에서는 다이어트댄스, 탁구교실, 요가 등의 수업이 이뤄지고 창신경로당은 건강체조, 한국어교실 수업을 진행한다. 교남경로당에서는 장구와 민요, 우리 춤 등 주민 건강과 취미 활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곳 프로그램은 주민들의 호응이 높아 참여 인원만 300명에 달한다. 종로구는 복지관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해 복지관 수요를 대체 공급하고, 경로당 이용 어르신과 지역주민 간 관계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경로당을 지역사회에 개방함으로써 새로운 여가문화를 형성하고 열린 교육·문화·예술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경로당에 대한 인식 변화와 어르신과의 유대감 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진구 중곡동 한마음경로당 역시 주민과 어르신이 함께 찾는 공간이다. 특히 금요일마다 운영되는 ‘어린이북카페’ 덕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는 공간이 됐다. 2층은 100여권의 책이 비치돼 있는데 이 공간에는 어린이와 초등학생이 예약 없이 자유롭게 들어가 책을 읽을 수 있다. 자양동에 위치한 유수지 경로당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각 요일별로 독서클럽, 건강체조, 레크레이션, 생활체조 수업이 진행돼 어르신과 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다. 특히 금요일에는 영화가 상영되는데 지역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상영하는 날이면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경로당에 모여든다.

서울시는 전 자치구에 2015년부터 개방형 경로당을 확대해 추진하고 있다. 작은복지센터형 경로당은 300㎡ 이상 규모 대형경로당에 복지관 기능을 도입하는 형태다. 유형도 다양하다. 지난해 2월 기준 카페·동아리형 133곳, 돌봄형 26곳, 학습형 241곳, 도서관형 15곳, 영화관람형 103곳, 작은복지센터형 68곳 등이다. 2015년 128곳이었던 개방형 경로당은 지난해 602곳까지 늘어났다. 올해 개방형 경로당에 투입되는 서울시 예산은 12억5000만원 규모다. 신규 개방형 경로당에는 150만원을, 작은복지센터형에는 500만원을 시비 100%로 지원한다. 설치된 개방형 경로당에는 시비와 구비를 각각 50%씩 매칭해 월 10만원을 운영비로 지원한다.

개방형 경로당을 확대해달라는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여가시간이 많은 어르신 특성상 아이 돌봄 등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는 곳도 생겨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방형 경로당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만족도가 높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달라는 의견이 많다”며 “지역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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