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신창호] 어느 새끼 몰티즈의 죽음 기사의 사진
두 마리의 개를 키우는 친구에게서 며칠 전 ‘카톡’이 날아왔다. “차를 몰고 집에 가는데 버려진 댕댕이 네 마리가 슬프게 걷고 있더라. 마침 차에 사료가 있어서 좀 주려고 내렸지….” 그렇게 시작된 문자의 끝에는 네 마리 유기견 사진이 있었다.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와 믹스견 두 마리, 웰시코기처럼 보이는 한 마리였다. 버려진 지 얼마 안돼 보이는 골든리트리버는 생김새가 멀쩡했지만, 나머지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저 골든리트리버 보이지? 목줄도 새것이야. 왼쪽 뒷다리를 심하게 저는데 주인이란 작자가 아프다고 내다버린 거지, 목줄까지 채워서 말이야.”

유기견들은 몸집이 작은 순서대로 줄을 서 있었다. 친구의 손에 들린 사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버려진 애들이라 엄청 굶주렸을 텐데 어찌 저리 사이좋게 먹을 순서를 기다릴 수 있을까.” 친구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다른 친구한테서 동네 쓰레기통을 뒤지던 믹스견을 데려와 키운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의사였던 이 친구는 믹스견이 시름시름 앓자 동물병원에 갔고 오른쪽 앞다리 골수암이란 진단을 받았다. 개는 수술로 오른쪽 다리 반 토막이 잘려나갔다. 친구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믹스견을 5년 가까이 보살폈고, 얼마 전 영원히 작별했다.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고 서울의 아파트로 이사하느라 아버지 친구 댁에 남겨두고 왔던 셰퍼드 ‘밴’의 울음이 기억난다. 그렇게 우렁차게 짓던 녀석이 그날은 아버지와 내가 그 동네를 벗어날 때까지 마치 늑대소리 같은 울음을 울었다. 팔뚝만 한 크기의 검은 털북숭이로 우리 집에 들어왔던 밴은 어른 키만큼 자랄 때까지 6년 동안 우리 가족과 같이 지냈다.

여러 학설이 있지만, 개가 사람의 친구가 된 게 3만5000~1만2000년 전이다. 인간에 의해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고 사육됐지만, 적(敵)이 된 적이 없다. 고양이와 함께 가축 중 유이(唯二)하게 식량으로 쓰이지 않는 동물이기도 하다.

개를 길러보면 왜 개가 사람의 친구인지 알게 된다는 이들이 많다. 내가 슬퍼하면 많지 않은 표정과 눈빛으로 위로해주고, 기뻐하면 더 기뻐 뛰어다니며 즐겁게 해준다. 어쩌다 잘못해 혼을 내고 벌을 주면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다. 죽을 때까지 오직 주인만을 따르고 지킨다. 비정하고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한 세상살이에 비하면 반려견의 마음은 순수하기 그지없을 정도다.

아이가 있는 집에선 부모가 다 보여주지 못한 삶의 교훈을 반려견이 준다고도 한다. 잘 보살핌을 받은 개는 보통 15년 정도 산다. 그러니까 아이가 청소년기쯤 됐을 때 반려견은 죽을 수밖에 없다. 함께 자란 개가 죽었을 때 아이는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찰할 시간을 갖게 된다. 슬퍼하기도 하고, 상실감을 이겨내려고도 하고, 기억하려고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도 유한하며 가족과 주변 사람 역시 마찬가지란 사실을 풍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으로 깨닫게 된다.

며칠 전 한 여성이 애견숍에서 분양받은 몰티즈 강아지 한 마리를 파양(破養)하려다 그대로 던져버린 사건이 화제가 됐다. CCTV에 녹화된 장면에서 여성은 강아지가 분뇨를 먹는데 왜 분양금을 돌려주지 않느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 여성은 겨우 눈을 뜰 정도의 새끼 강아지를 오른손에 잡고 사정없이 내동댕이쳤다. 철없는 어린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장난감을 던져 부수듯 말이다. 이 강아지는 동물병원에서 심한 구토를 하다 죽었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입양하려면 끝까지 한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완구처럼 가지고 노는 사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친구로 여기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사람처럼 대소변을 못 가려도 끝까지 가르치고 보살필 마음이 필요하다. 이 각오와 생각과 다짐으로 반려동물을 대하다 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그런 자신의 심장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신창호 토요판 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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