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남진 (1)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들은 팝송에 완전히 빠져

친구가 부른 ‘오 캐럴’에 귀가 번쩍…동네 레코드가게 달려가 당장 구입 집에오면 네다섯시간씩 따라불러

[역경의 열매] 남진 (1)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들은 팝송에 완전히 빠져 기사의 사진
가수 남진 장로가 지난달 16일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언론인이 될 수도 있었다. 장남이었기에 목포일보 발행인이었던 아버지의 대를 이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체 노래가 좋았다. 그래서 인생길이 바뀌었다.

나는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7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목포북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지금은 폐교된 경복중학교에 다녔다. 1950년대 한국에도 서양의 팝음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들은 팝송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닐 세다카의 ‘오! 캐럴’이었다. 가사가 이랬다. “오! 캐럴, 아임 소 인 러브 위드 유!(Oh! carol, I'm so in love with you!· 오! 캐럴, 나는 너와 사랑에 빠졌어!)”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친구 덕분이었다. 하루는 친구가 학교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참 재미있어 보였다.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여서 “어떤 노래냐”고 물으니 “요즘 유행하는 ‘오 캐럴’”이라 했다. 그날 동네 레코드가게로 달려갔다. 레코드가게 주인이 “요즘 이 노래가 더 유행한다”며 몇 가지 노래를 추천해줬다. 폴 앵카의 ‘다이애나’라는 노래였다. 레코드판을 사서 날마다 들었다. 전축이 귀한 시대였지만 유복한 환경이어서 가능했다.

학교에 갔다 집에 오면 전축부터 틀었다. 팝송을 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심취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데뷔작인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노래에 빠져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구해서 들었다. 흑인 가수 냇 킹 콜의 ‘모나리자’도 좋았다.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앤디 윌리엄스와 펫 분의 노래도 들었다.

냇 킹 콜은 폐암으로 일찍 별세했다. 그는 미국성공회 로스앤젤레스교구 성제임스교회의 성가대원이었다. 흑인의 성가대 참여가 금지된 시기여서 냇 킹 콜 때문에 담임신부가 쫓겨난 적도 있다고 한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었는데 한국에선 가수 최희준의 목소리가 냇 킹 콜과 비슷했다. 그가 부른 ‘맨발의 청춘’이 바로 냇 킹 콜 스타일의 노래다. 최희준도 원래는 미8군 무대에 섰던 가수였다. 인기가수였던 패티 김과 현미도 미8군에서 노래했는데 냇 킹 콜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 이들은 모두 처음에는 팝송을 부르던 가수였다.

학교에 다녀오면 하루 네다섯시간씩 노래를 듣고 따라불렀다. 공부는 하지 않고 노래에만 빠져 살았다. 지금도 그때처럼 노래가 좋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만드신 듯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다. 나보다 더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나처럼 음악에 미치지는 않았다. 온종일 듣고 부르고 그렇게까지는 않았다.

노래에 심취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얼굴은 성형할 수 있지만 발성은 인위적으로 고칠 수 없다. 좋은 목소리를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 같다. 연습을 하면 소리가 좋아질 수 있지만 특유의 목소리를 갖는 건 다르다. 이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약력=1945년 전남 목포 출생. 목포고,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서울플레이보이’로 1965년 가수 데뷔, 1969~71년 월남 파병, 1971년 서울 시민회관 첫 리사이틀 공연, 2006년 대한민국가수협회 초대회장, 대표곡 ‘둥지’ ‘님과 함께’ ‘빈잔’ ‘울려고 내가 왔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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