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전정희] 김복동 할머니의 유산 기부 기사의 사진
일본의 사과를 끝내 듣지 못하고 지난달 28일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 일제 위안부 피해자로 1990년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린 후 죽는 날까지 인권운동가로 살았다. 그가 병상에서 사력을 다해 한 말은 “어머니가 보고 싶다”였다고 한다. 93세 할머니의 이 소망엔 일본군에 잡혀 집을 떠나는 소녀 김복동과 그의 어머니의 한 서린 장면이 상상된다. 그 어머니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김 할머니가 전 재산을 일본의 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고 떠났다는 소식이 11일 전해졌다. 허름한 이 학교 학생들은 ‘존경하는 김복동 할머니’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김 할머니가 정신대대책협의회의 일원으로 일제의 성노예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일본에서 싸울 때면 재일동포 사회가 적극 지지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일제 침략과 분단의 피해자 조선학교를 알게 됐다. 김 할머니와 조선학교를 돕는 활동을 같이 했던 배우 권해효씨는 할머니 유언이 “조선학교를 지켜라”였다고 밝혔다.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도 마지막 유언 가운데 하나가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를 도우라”였다. 아버지가 도쿄의 노무자였던 권정생은 광복 후 귀국했으나 지독한 가난 때문에 거지 생활도 해야 했다. 폐병을 안고 경북 안동 일직교회 종지기로 살던 그는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으로 한국 최고의 아동문학가가 됐다. 권 선생은 연 인세 1억원과 10억원 등 남은 재산을 북한과 아프리카 등 굶는 어린이를 위해 써 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지금은 권정생문화재단이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는 죽는 날까지 허름한 옷 몇 벌로 살았다.

‘청계천 성자’로 불리는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88) 목사도 북한 아동을 돕고 있다. 그는 70, 80년대 서울 청계천 변 가난한 어린이들이 굶지 않도록 도쿄 자신의 집을 팔아가면서까지 탁아소를 세웠다. 노무라 목사는 아들과 며느리를 통해 북한에 정기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이 세 어른은 일제의 전쟁 만행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에게 가난과 공포는 깊은 상처였다. 전쟁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그들은 사랑과 용서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념과 폭력은 사랑과 용서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이념과 폭력은 시간이며, 사랑과 용서는 세월이기 때문이다. 세 어른은 세월을 살았다. 그들이 행한 삶의 권면을 들을 일이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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