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등록금 냈나… 광클해도 ‘망한 시간표’ 허탈 기사의 사진
“전공수업 수강신청에 복수전공생이 몰리면서 18학점 중 9학점밖에 신청을 못 했어요. 등록금이 아까워 결국 휴학을 신청했습니다. 강사 수는 늘리지 않으면서 학생만 늘길 바라는 학교의 무책임한 행태가 실망스러워요.”

대학생 이성한(가명·26)씨가 울분을 토했다. 대학생 윤상철(가명·27)씨는 수강신청에 실패하는 바람에 졸업을 유예했다. 전공필수 과목에 지원자가 몰려 매번 신청을 못 하다가 결국 마지막 학기까지 수강신청에 실패했다. 윤씨는 15일 “교수님께 사정했지만 나 말고도 이런 처지에 놓인 학생이 많아 소용없었다”며 “학사모를 쓰고 졸업사진을 찍는 동기들을 지켜봐야 했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수강신청 전쟁을 벌이고 있다. 원하는 과목을 듣지 못한다는 차원을 넘어 졸업을 못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민일보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전국 20대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42.7%는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학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엔 매 학기 초마다 ‘망한 시간표’ 관련 글이 올라온다. 공강시간이 긴 ‘우주 공강’, 밥 먹을 틈 없이 강의가 빽빽한 시간표, 매일 1교시 수업으로 채워진 시간표 등 유형도 다양하다. 대학생 임수아(가명·23)씨는 지난 학기 ‘우주 공강’ 시간표 때문에 새벽 7시에 집을 나와 밤 11시가 넘어 귀가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2시간이 걸리는데, 수강신청 실패로 같은 날 오전 9시 수업과 저녁 6시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예원(가명·21)씨는 반대로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빈틈없이 수업을 들어야 했다. 김씨는 “끼니를 거르는 건 일상이었고, 특히 같은 날 시험이 겹쳐 좋은 성적을 받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윤기범(가명·24)씨는 ‘K대 체스판’으로 불린다. 군데군데 공강이 섞여 있는 시간표가 마치 체스판 같아서 붙은 별명이다. 그는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1교시 수업과 야간 수업을 적절히 섞을 수밖에 없었다”며 “학생들이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하기엔 개설된 강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수강신청 기간에 서버가 다운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2015년 2학기 한양대에서는 인기 과목을 선점하려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사이트에 접속해 서버가 마비됐고, 지난해 동국대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 번의 수강신청이 한 학기 학교생활을 좌우하다보니 부정행위에 눈을 돌리는 학생도 있다. 대표적인 게 ‘매크로’(자동명령 프로그램)를 돌리는 행위다. 수강신청에 성공할 때까지 컴퓨터가 스스로 신청 버튼을 무한정 누르도록 조작하는 것이다. 인기 과목을 사고파는 행위도 허다하다. 한 대학생은 “경쟁률이 치열한 강의를 수강할 생각도 없이 신청한 뒤 필요한 학생에게 돈을 받고 되파는 경우도 있다”며 “익명으로 거래가 이뤄져 규제나 신고도 어렵다”고 전했다.

대학생들이 ‘수강신청 전쟁’에 분노하는 건 비싼 등록금과 무관치 않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정보 공시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년제 대학생의 평균 한 학기 등록금은 335만5900원이다. 한 대학생은 “거액의 등록금을 받으면서 수강신청 기간 서버 불안정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대체 그 많은 등록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연세대는 2015년 2학기부터 ‘수강신청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했다. 학생들에게 마일리지를 제공한 뒤 꼭 듣고 싶은 강의엔 많은 마일리지를 걸어 성공 확률을 높이는 제도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 제도가 수강신청 성공을 보장하지도 못하면서 눈치싸움만 부추긴다며 ‘연세랜드’ ‘연세토토’라고 비꼬아 부른다.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독협대는 강의에 할당된 정원이 없다. 신청자가 몰려 배정된 강의실 수용인원을 초과하면 더 큰 강의실로 옮긴다. 이마저 어려우면 대체 강의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교무과에서 직접 돕는다. 일본 리쓰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나 미국 노트르담대의 경우 수강신청 서버 마비를 방지하기 위해 직전 학기 성적에 따라 수강신청 기간에 차등을 둔다. 미국 브라운대는 ‘쇼핑 피리어드(shopping period)’ 기간을 둬 개강 후 3주간 자유롭게 수업을 참관한 뒤 쇼핑하듯 원하는 강의를 고를 수 있게 했다.

2017년 안암교육학회가 발표한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에 따른 대학생 수강신청 기준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교양과목의 경우 ‘학습 편의성’, 전공과목은 ‘교수의 전문성’을 기준으로 과목을 고른다. 그러나 강의 수나 강의실 제한, 수강신청 기간 서버 문제 등으로 인해 이런 기준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각 대학은 학생들의 교육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원하는 강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현재 수강신청 제도와 시스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취재·기사 작성=이은서 오수진, 도움=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