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권혜숙] 웃픈 치킨 기사의 사진
①손질된 닭 1마리를 우유 200㎖에 30분간 재운다. ②튀김가루와 물을 1.5컵씩 섞는다. ③닭에 튀김옷이 골고루 묻도록 버무린다. ④냄비에 기름을 넣고 달군 후 닭을 넣는다. ⑤닭을 1차로 7분 정도 바삭하게 튀기고, 2차로 2분간 한 번 더 튀긴다. ⑥소스 재료(간장 300㎖ 설탕 260g 미원 5g 후추 10g 물엿 15㎖ 식용유 30㎖ 참기름 20㎖ 고춧가루 13g 다진양파 175g 간마늘 75g 콜라 125g)를 섞어 준비한 후 달궈진 팬에 약불로 3분 정도 조린다. ⑦튀긴 닭에 소스가 잘 배도록 버무린다.

이것은 칼럼인가 음식 기사인가. 난데없는 이 레시피는 13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극한직업’의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공개한 수원왕갈비통닭 만드는 법이다. 치킨이 형사 5인방에 이은 여섯 번째 주인공이라는 평이 나올 만큼 치킨을 빼놓고 이 영화를 말할 수는 없다. 영호 역의 배우 이동휘가 농반진반 “(영화에서 나보다) 치킨이 더 잘 나온 것 같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병헌 감독은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짜장면과 치킨 중 치킨을 택했다”고 했는데, 마 형사(진선규)가 수타면 뽑는 영화였다면 어쩔 뻔했을까.

‘극한직업’의 이종석 프로듀서는 “영화의 8할은 치킨”이라며 그만큼 치킨에 공을 들였다고 소개했다. 6개월 제작 기간 동안 공수된 닭만 463마리. 딱 ‘치킨 CF’처럼 보이는 것을 목표로 현장에 푸드 트럭을 대기시키고 매일같이 닭을 튀겨냈다고 한다.

111분 동안 실컷 웃어놓고 굳이 흠을 잡자면, 잠복 수사하느라 위장 창업한 닭집이 대박이 난다는 설정은 지하 터널을 파 은행을 털겠다며 은행 옆에 쿠키 가게를 냈다가 손님이 폭주한다는 우디 앨런의 영화 ‘스몰 타임 크룩스’와 흡사하고, 영화 제목은 EBS에서 11년째 방송 중인 동명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빌려왔다는 정도다. ‘극한직업’이 기발한 것은 쿠키도 짜장면도 아닌 ‘국민 간식’ 치킨을 선택함으로써 ‘치킨집 사장님’으로 대표되는 소시민 자영업자의 애환으로 공감대를 넓혔기 때문이다.

치킨은 1997년 이후 부동의 ‘외식 메뉴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치킨의 사회학을 다룬 ‘대한민국 치킨전’을 쓴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씨는 치킨이 서민 대표음식이 된 것은 한국인이 유난히 치킨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치킨집이 너무 많아서 많이 먹게 됐고, 먹다 보니 습관이 됐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치킨집은 3만5000~5만개로 추정되는데,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를 합한 것보다 많다고 한다.

애초에 치킨이 1위에 오른 97년은 외환위기 때로, 실직한 가장들의 막다른 선택이 외식 시장 판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그러나 2016년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3년 이내 폐업률이 가장 높은 업종이 치킨집(38%)이었다. 2013년 조사에서는 10년간 매년 7361개꼴로 치킨집이 오픈하고, 5013개꼴로 폐업했다고 했다. 문 닫는 치킨집 옆에 문 여는 치킨집이 생기는 셈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오늘도 고 반장(류승룡)처럼 퇴직금을 털어 치킨집을 낼 것이다.

우리는 2만원짜리 치킨을 먹지만 ㎏당 1374원에 생닭을 납품한다는 양계 농민들까지 파고들면 치킨 한 마리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들어있는가. 책 한 권에 그 무거운 얘기들을 풀어낸 정은정씨는 “함께 모여 즐겁게 치킨을 먹는 날들을 억지로라도 만들고, 배달 앱 대신 동네 단골 치킨집에 전화로 주문하고, 남길 것 같으면 무도 많이 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 제작진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PD는 “영화 개봉 후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대사를 홍보 문구로 쓰고 있는 가게들을 많이 봤다. 수원왕갈비통닭이라는 메뉴를 파는 곳도 있지만 소상공인 가게라 시비를 가리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알고 보면 이렇게 짠한 치킨. 퇴근길 아파트 단지 앞, 두 마리에 1만1000원 하는 장작구이통닭 트럭이 오늘도 와 있을지 모르겠다.

권혜숙 문화부장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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